토지 분배, 민간기업 국유화 외치던 마오 시절 회귀
기업·교육계 '울며 겨자 먹기' 기부 행렬
"시장 신뢰 잃으면 공동부유 아닌 공동빈곤" 비판도
시 주석은 마오쩌둥 이후 중국의 가장 강력한 통치자로 꼽힌다. 그런 그도 처음부터 문화대혁명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문화혁명 이전 1세대 공산당 원로였던 그의 아버지 시중쉰은 1962년 류즈단 사건 이후 공산당의 박해를 받았고, 시 주석 역시 수백만 명의 다른 10대들과 함께 시골로 보내지는 고초를 겪은 탓이다.
그러나 최근 1년간 중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철퇴부터 사교육 탄압, 미성년자 게임 규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극적인 움직임 속에서 시 주석은 민간 부문과 시민의 일상적 생활에서 당을 우선순위로 다시 놓고 있다. FT는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시대를 연 이후로 볼 수 없던 방식”이라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중국 관영 언론매체들은 당국의 규제 단속을 ‘심오한 혁명’이라고 지칭한 프리랜서 작가 리광만의 글을 최근 일제히 게재하며 벌써 시 주석의 행보를 찬양하기 바쁘다. 리광만은 “중국에서 기념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자본주의 파벌에서 인민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혁명 정신과 영웅심, 정의로의 회귀”라고 밝혔다. 시 주석이 사실상 제2의 문화대혁명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화대혁명과 시 주석의 행보가 다른 점은 현 중국이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마오는 시 주석이 누리는 것 이상의 개인 권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지만, 실제 행정권은 당 기구가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마오가 젊은 홍위병을 앞에 두고 문화혁명을 벌인 이유라고 FT는 꼬집었다. 반면 시 주석 1인의 행정권 장악은 마오보다 훨씬 강하다.
‘공동부유’를 내세운 시 주석의 정책은 여전히 마오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공동부유는 과세와 자발적 기부, 균등한 자재 공급 등을 통해 소득 재분배를 꾀하려는 시 주석 체제의 전략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시 주석의 공동부유가 지주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민영기업을 당에 귀속시켰던 마오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시 주석이 지난달 17일 공동부유를 발표한 지 불과 26시간 만에 중국 대표 기술기업 텐센트가 500억 위안(약 9조 원)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7월엔 중국 교육당국이 사립학교를 공립화하거나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후 2만 명 학생을 보유한 허난성의 한 사립고가 “모든 것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당국의 칭찬을 듣기도 했다. 공동부유 정책이 요구하는 기부는 자발적 행위에 기반을 두지만, 당국이 “고수입은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불법 수익은 단속한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울며 겨자 먹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6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들의 뇌리에서 잊힌 조직인 공소합작총사가 인민은행 등과 공동으로 농촌 신용을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사업모델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해당 모델이 실현되면 1958년 농업 집단화를 위해 공산당이 만들었던 집단농장인 ‘인민공사’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일련의 정책이 시 주석의 3연임 도전에 앞서 시행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뒤따른다. 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는 얼마 전 ‘경제 50인 논단(CE50)’ 기고를 통해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정부가 빈번히 개입하면 ‘공동빈곤’이 될 것”이라며 기업경제 활성화를 촉구했다. 해당 글은 현재 웹사이트와 개인 소셜미디어에서 삭제된 상태다.
FT는 “시 주석은 내년 유례없는 3연임을 준비하면서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개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 주석은 마오 시대에 있던 후진적인 선전 도구와 협박 전술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