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서울 주택 4채 중 1채 외지인 손에
"밀려나는 실수요자ㆍ지방 주택시장 소외 현상 주시해야"
#지방 아파트 3채를 소유한 다주택자 A씨는 실거주할 곳과 임대수익을 얻을 아파트 1채를 남긴 뒤 모두 처분할 생각이다. 대신 매도 과정에서 얻은 시세 차익에 여윳돈을 보태 서울 아파트 한 채를 매수할 계획이다. A씨는 "서울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니 ‘똘똘한 한 채’ 정도는 서울에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밖 거주자들의 서울 주택 매수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서울 주택을 안전자산으로 보는 인식과 재테크용으로 서울 주택만한 게 없다는 견고한 믿음이 공격적인 '원정 쇼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방 '큰 손'들이 서울 주택을 쓸어담으면서 집값이 치솟자 서울 시민들은 경기·인천 등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1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서울에서 매매 거래된 주택은 8만3857건으로, 이 중 외지인들이 산 주택은 2만2349건을 차지했다. 무려 26%가 넘는 비중이다. 서울 주택 4채 중 한 채는 외지인이 샀다는 얘기다.
외지인의 서울 주택 매수비중은 문재인 정부가 출발한 2017년 19.29%로 시작해 △2018년 21.2% △2019년 23.96% △2020년 25.73%로 지속적으로 늘었다. 과거 집값 급등기에도 20% 안팎을 보이던 외지인 거래 비중이 이제 30%를 바라볼 정도로 공격적으로 변한 셈이다.
지역별로는 도봉(34.25%)·강서(33.47%)·양천구(32.0%) 등에서 외지인의 주택 매수 비중이 높았다. 지방 부자들의 강남 주택 선호도 여전했다. 강남3구에선 외지인 매수 비중이 강남구 24.9%, 서초구 23.0%, 송파구 23.5%로 4채 중 1채가 외지인의 손에 들어갔다.
서울 밖 거주자들의 서울 주택 매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집값 하락기에도 서울 아파트는 급락할 가능성이 적다는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지방의 웬만한 부자라면 서울에 집 한 채씩은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서울 집값은 경기 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이 없는 한 계속 오를 것이라는 '서울 불패' 믿음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지방 주요 도시 아파트값이 최근 몇년 새 급등하면서 서울 집값이 오히려 싸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났다”며 “과거엔 지방 부자들이 강남구 압구정동이나 대치동, 서초구 반포동 등 강남 핵심 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를 많이 샀는데 요즘은 서울 전역의 중저가 주택까지 가리지 않고 사들이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지방 투자자들이 서울 주택 매수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서울 주택 수요자는 서울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올들어 7월까지 경기도 주택 매매 거래 건수는 17만7835건으로, 이 중 서울 거주자의 매입 건수는 3만1531건(17.7%)이었다. 서울 시민의 경기도 주택 매수 비중이 2017~2020년 10%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탈서울 현상이 극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집값 급등이 탈서울 행렬을 자극하면서 경기도 아파트값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8월 경기도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5억5784만 원(KB국민은행 기준)으로 1년 전(4억276만 원)보다 1억5000만 원 넘게 올랐다.
지방 큰 손들이 서울 주택을 쇼핑하는 이면에 지방 주택시장이 소외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 자산가들이 서울 주택 투자에 나선다는 것은 그만큼 지방 주택시장이 앞으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라며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 주택시장 규제 완화 등 제도적인 보완 작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