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연 메타버스 포털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온 오후 7시. 10살 초등학생 서윤이는 또 다른 일상을 시작한다. 바로 가상 세계 ‘제페토’에서의 일상이다. 닉네임은 자신의 이름을 본 따 만든 ‘서유니’.
서유니가 가장 먼저 제페토에 접속해서 하는 일은 캐릭터를 꾸미는 일이다. 눈 색깔도 바꾸고 마음에 드는 옷도 골라 입으며 캐릭터를 단장한다. 요즘 꽂힌 헤어 스타일은 길게 땋은 머리나 긴 양 갈래 머리다. 현실의 서윤이는 단발이라 못하는 머리 모양을 제페토 세상의 서유니는 마음껏 할 수 있다.
◇ “제페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캐릭터를 예쁘게 꾸민 뒤 서유니가 향하는 곳은 제페토 월드다. 다양한 맵에서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가상 세계다. ‘BT21 테마파크’, ‘무릉도원’ 같은 환상 가득한 맵부터 현실을 본뜬 ‘한강공원’, ‘지하철’ 맵도 있다.
서유니가 최근 가장 즐겨 방문하는 맵은 카페 병원이다. 일종의 역할 놀이인 ‘상극(상황극)’을 하기 좋기 때문이다. 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 “안녕하세요. 저하고 친추(친구 추가)하실래요?”라고 물은 뒤 친해지면 상황극 놀이를 한다.
상황극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주로 학상(학교 상황극)이나 가상(가족 상황극)을 한다. 서유니는 해리포터 상황극도 즐긴다. 함께 놀다가 친해지면 ‘반모(반말 모드)’를 한다. 때로 서윤이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도 만나지만, 현실 세계의 잣대는 제페토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다. “저희 반모하실래요?” 한 마디면 모두 친구가 된다.
“제페토 월드에서 놀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좋아요. 친구를 사귀는 느낌이 들고요.” 코로나19로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요즘, 제페토는 서윤이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놀이터다.
◇ 밀레니얼이 ‘인소’세대였다면, Z세대는 ‘제페토 드라마’
요즘 서윤이가 특히 빠진 건 ‘제페토 드라마’다. 움직이는 제페토 캐릭터를 영상화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웹 드라마다. 보통 작품 한편 당 5~10분 사이로, 10대 제페토 사용자들이 직접 제작한다.
최근 서윤이가 즐겨보는 제페토 드라마는 ‘썸남을 노리고 다가오는 친구’다. 제목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노리고 다가오는 친구와의 삼각관계가 주요 서사다. 최근 유튜브에는 수많은 제페토 드라마가 올라오고 있는데, 주로 일진·연애 등 옛 인소(인터넷 소설)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가 많다.
2000년대 초반 밀레니얼 세대가 ‘늑대의 유혹’, ‘그 놈은 멋있었다’ 같은 활자 소설을 즐겨봤다면 요즘 10대는 움직이는 제페토 웹드를 즐기고 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제페토 드라마는 9월 기준 56만 회나 재생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영상 편집 앱으로 직접 제페토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유튜브 콘텐츠도 인기다. 서윤이의 주변에도 직접 영상 편집 앱으로 제페토 드라마를 만드는 친구가 있다.
◇ 꿈 많은 10살, 메타버스에서 미래의 꿈 그린다
서윤이가 마냥 메타버스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앱을 통해 서윤이의 메타버스 접속 시간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용돈 때문에 캐릭터도 원하는 만큼 마음껏 꾸미지 못한다. 아이템 가격이 부담되지 않냐는 질문에 서윤이는 “얼마 전 사고 싶은 헤어 스타일이 있었는데 못 샀어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부모님은 서윤이가 책을 10권 읽고 독서록 5편을 써야 1만 원을 충전해주신다. 제페토에서 1만 원이면 젬 125개를 얻을 수 있는데, 서윤이는 이를 대부분 캐릭터 옷을 사는 데 쓴다. 옷 한 벌당 보통 3~30젬 정도인데, 아이템 하나당 최대 240원에서 2550원 정도 하는 셈이다. 30젬을 훌쩍 넘는 옷도 많은데, 구찌와 제페토가 컬래버레이션한 가방은 하나 당 70젬이 넘었다.
가끔 게임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도 접속하는 서윤이는 얼마 전 로블록스에서 타고 날아다닐 수 있는 다람쥐를 샀다. 펫에 ‘날타 물약’을 먹이면 다람쥐에 날개가 돋는다. 로블록스 세상에서 서유니는 날개 달린 다람쥐를 타고 자유롭게 곳곳을 다니며 친구를 사귄다. 제페토에서처럼 상황극도 한다.
10살 서윤이에게 메타버스는 놀이터이자 미래의 나를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윤이는 상황극 속에서 다양한 사람으로 변신하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저는 배우도 하고 싶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하고 싶어요. 캐릭터나 사람을 예쁘게 꾸미는 게 좋아요. 의사나 수의사도 하고 싶어요. 제페토에서 동물 상황극도 해요. 서로 동물 흉내를 내면서 동물을 돌봐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