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A항구 등 정박 대기하는 선박으로 혼잡
트럭 운전사·창고 작업자 부족 등 공급망 혼란이 원인
AP통신 “독일 국적 컨테이너선, 사고 인근서 비정상 움직임 보여”
미국 캘리포니아 해상에서 발생한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로 환경오염은 물론 이 일대 야생동물과 해양 동·식물의 멸종위기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사고의 원인이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이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공급망 혼란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출 사고가 확인된 것은 지난 3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당시 캘리포니아주 남부 오렌지카운티 헌팅턴비치 해안에서 약 5마일(8㎞) 떨어진 앞바다에서 원유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최초 유출 사고 신고는 1일 저녁에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름은 석유 굴착장치 ‘엘리’와 연결된 수중 파이프라인 파열로 새어 나왔다. 이 송유관을 운영하는 해상 석유 시추업체 앰플리파이에너지가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원유 유출량은 14만4000갤런(약 54만5099L)에 달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는 기름 유출 사고 발생 이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관계 당국은 선박의 닻이 송유관에 부딪힌 것이 파이프라인 파손 원인일 가능성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와 CNN은 17.7마일(약 28.48km) 길이의 송유관 중 4000피트(약 1219m) 정도가 측면으로 휘어진 점 등을 미뤄 컨테이너선의 닻이 파손 원인일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기름 유출 사고의 원인으로 선박의 ‘닻’이 지목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이 일대 해상이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대기하는 컨테이너선들로 혼잡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CNN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미국 최대 항구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LA) 항구와 롱비치항구에 입항하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닻을 내려 대기하는 컨테이너선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입항을 위해 닻을 내려 대기하는 컨테이너 선박 수만 62~76척 정도였다. 이들이 입항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일에 이른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전에는 컨테이너선들이 도착하자마자 정박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LA항구 책임자인 진 세로카는 CNN에 “모든 화물을 미국 공급망으로 흡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고속도로 10개 차선을 타고 온 화물이 항구로 도착하고 나서는 5차선을 타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컨테이너를 운반할 트럭 운전사와 창고 작업자 부족이 항구 혼잡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대면 서비스 소비가 줄어든 대신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등 구매 패턴 변화도 공급망에 영향을 주고 있다.
물론 이 일대가 컨테이너선으로 혼잡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써는 컨테이너선의 닻이 사고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닻은 지정된 지역에서만 내릴 수 있도록 규정이 있는 데다, 선박들이 송유관 위치를 알고 있어 이를 충분히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7일 AP통신은 대형 선박의 위치 관련 무선 신호를 추적하는 마린트래픽 데이터를 인용해 독일 국적 선박 로테르담 익스프레스가 사고 송유관 근거리에서 이틀간 세 차례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송유관 바로 위에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로테르담 익스프레스는 지난달 22일 롱비치 항구 인근에 도착해, 파이프라인에서 약 610피트 떨어진 곳에서 닻을 내렸다. 정박 중이던 로테르담 익스프레스는 이튿날 오후 5시께 갑자기 남동쪽으로 수천 피트 이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파이프라인 바로 위로 약 30m가량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AP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해당 선박의 선사인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마린 트래픽 데이터와 실제 선박의 위치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기름 유출 사고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해안경비대 측은 5일 브리핑을 통해 유출 사고 현장에 선박이 확인된 것은 없지만 사고 시점 전후로 해당 지역에서 이동한 선박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선박의 닻에 걸려 파이프라인이 휘어졌을지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해안경비대는 6일 로테르담 익스프레스가 초기 조사 과정에 포함돼 있으며 다른 선박의 동선에 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밖에 항구의 선박 정박 지연 문제 등으로 캘리포니아 대기 오염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캘리포니아대기자원위원회는 6월 보고서에서 항구 정박을 위해 대기하는 선박이 늘어나면서 스모그를 형성하는 산화물이 늘어나 항구 일대에 실질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가 발표될 당시 항구 정박 대기 선박 수는 하루 평균 40척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는 평균 60척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