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을 연출한 김진민 감독이 남자가 아닌 여자 주인공을 택해 누아르를 연출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조직에 들어간 ‘지우’가 새로운 이름으로 경찰에 잠입한 후 마주하는 냉혹한 진실과 복수를 그린다.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수업’으로 파격적인 설정과 완성도 높은 연출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은 김진민 감독이 넷플릭스와 함께하는 두 번째 연출작으로, 극본은 ‘히어로’와 ‘패밀리’의 김바다 작가가 썼다. 여기에 드라마 ‘부부의 세계’, ‘알고있지만,’을 통해 신예로 떠오른 배우 한소희가 주인공 지우 역을 맡아 작품은 공개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무엇보다 작품의 주목할 만한 점은 전통 누아르극에 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선 것이다. 한소희를 앞세워 남성 캐릭터가 주를 이뤘던 액션 누아르의 새 장을 열었다.
18일 화상으로 만난 김진민 감독은 “대본의 묵직함이 좋았고,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 맘에 들어서 이런 글이라면 도전해 볼 만 하겠다 싶었다”라며 작품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여성이 주인공이었기에 작품을 택했다고 밝힌 김진민 감독은 “액션 장르 작품이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장소와 액션의 다양함을 차별적으로 두고 싶었다. 시청자들에게 ‘봤던 것을 또 본다’는 느낌을 주지 않겠다는 게 1차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지우는 눈앞에서 아빠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가 속해 있던 조직에 일원으로 들어가 복수를 꿈꾼다.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직의 보스 무진(박희순)의 제안으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오혜진으로서 경찰에 잠입한다. 그러나 여성이 주연이란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등장인물의 러브라인이 극의 흐름을 해친다는 평도 잇따랐다.
“새로움보다는 언더커버물이 가진 매력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버지와 딸의 이중 커버가 재밌는 부분도 있었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또 드러내기 위해 클리셰를 활용했어요. 각각의 캐릭터가 자기 역할을 하는 것 자체가 변별력은 있다고 생각해요. 러브 신을 통해서는 인물이 사람 온기를 잃어버리고 오랜 시간을 보내왔지만 괴물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후회는 전혀 없어요.”
주인공 지우를 연기한 한소희는 대역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액션신을 직접 소화했다. 이 같은 장면들을 연기하기 위해 한소희는 체중을 10㎏ 증량하기도 했다.
“배우는 외모 특성이 한계를 많이 규정짓는데 소희 씨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고 싶다고 했어요. 아름다운 역할을 할 기회는 많겠지만 이런 작품에서 몸을 던져볼 기회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해줬죠. 액션은 진행 순서대로 찍었는데 뒤로 갈수록 소희 씨가 긴장이 풀려서 액션이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큰 부상 없이 계속 훈련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이었어요.”
‘마이 네임’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 뒤를 이어 공개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김진민 감독은 이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에 선보이는 신작이어서 사실 부담감이 컸어요.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큰일을 해줘서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에게 감사하죠. ‘전 세계가 한국 콘텐츠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갖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동안 좋은 K-콘텐츠가 대접을 받지 못했던 현실이 아쉬웠거든요. 이제부턴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이 작품이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받을 수 있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초반 평가가 박하진 않아서 다행이에요. 배우들이 정말 고생했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인 것 같아요.”
이날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마이 네임’은 한국에서 ‘오늘의 톱10’ 1위에 오른 데 이어 전 세계 넷플릭스 TV 쇼 부문 4위에 오르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김진민 감독은 “액션물은 세계적으로 문화적으로 상쇄되는 부분이 적다. 대중적인 소구력을 지닌 장르”라며 “액션을 할 것 같지 않은 배우가 앞으로 나아가는 면도 새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TV드라마인 ‘개와 늑대의 시간’, ‘무신’ 그리고 넷플릭스 ‘인간수업’까지 주로 선 굵은 작품의 연출을 맡아온 김진민 감독이다. 그는 “이제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그런 작품들에 에너지가 많다고 느껴요. 작품을 선택할 때 재미보다 작가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다가가요. 스스로가 문제아가 된 것 같은데 겁없이 문제작을 짚는 것이 나의 단점이나 장점이죠.(웃음) 시즌 2요? 하고 안하고는 작가님들과 제작사, 그리고 넷플릭스에 달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제 몫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