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

입력 2021-10-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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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지난 주말 당직을 서며 세 명의 환자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갑작스럽게 쌀쌀해진 가을 날씨만큼 스산한 기분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모두 난소암 환자로 이름도 나이도 달랐지만, 약속한 듯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 후 세부분과를 정할 때 나는 이런 기분이 싫어 주저 없이 부인과 대신 산과를 택하였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산과는 ‘삶’을 함께하지만, 부인과는 ‘죽음’을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뭐든 시작보다는 끝이 어려운 법. 나는 지금도 여전히 눈감은 그녀들 옆에서 담담하게 사망선고를 할 자신이 없는데, 내게 거부할 수 없는 그 책임의 시간이 또 오고야 말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5단계를 정의했다.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단계인데,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면서 나는 이 5단계를 지나는 환자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한다. 왜 자기를 곧 죽을 사람 취급하냐며 소리를 지르는 환자도 있고, 너무 무서우니까 제발 5분만 같이 있어 달라는 환자도 있다. 복수가 차 배가 남산만큼 불렀는데 식욕을 조절할 수 없어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환자도 있고, 가족들이 해오는 음식은 고사하고 미음 한 수저 떠먹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환자도 있고,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환자도 있다. 누구는 이 5단계를 지나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누구는 이 5단계를 지나는 데 수일밖에 걸리지 않지만, 지나는 이나 지켜보는 이 모두에게 힘든 시간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라는 것이 생겨 19세 이상 성인이면 현재 암 환자가 아니어도 향후 겪게 될 임종 단계를 가정해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의학적 상황에서 치료 효과 없이 무의미하게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시술을 거부하겠다’는 의향을 미리 서류로 작성해 둘 수 있다. 이번 주말, 나는 그녀들의 죽음을 함께하며 나라면 어떤 방식의 끝을 선택할까 많은 생각을 하였다. 초 단위로 빠르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잠시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나의 죽음, 나의 끝’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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