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잡기용, 정치권이 불러올 역효과 우려…"과세 시스템 시범 운용도 어려워"
여야 대선후보들이 연이어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시사하자, “표심에 떠밀려선 안된다”는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8일 민주당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에 맞춰 가상자산 투자의 과세 시점 또한 조정하겠다는 뜻이다. 2일 민주당이 공개적으로 2023년 과세유예 추진을 천명한 데 이어 가상자산 과세 유예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또한 지난 9월 경선 토론회에서 가상자산 유예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관련해 업계 전문가는 “최근 여야 대선 캠프 모두에서 (가상자산 정책 개발과 관련) 제안서를 보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라며 “2030이 가상자산을 본인들이 강점을 보이는 투자 영역이라 여기는 측면도 있고,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만큼 관련 정책을 설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여야 후보 모두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로 가닥을 잡은 것에 업계는 일단 안심하는 분위기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원래 투자자들이 과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라며 “‘과세 전에 다 털고 나가야 한다’, ‘연말에 폭락이 온다’는 등의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과세가 사실상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한편 표심 잡기용으로 정치권이 나섰다가 불러올 역효과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e스포츠나 웹툰 산업 등 전문성이 없는데 2030의 표심을 잡겠다고 찾아갔다가 되레 상황이 악화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여당 관계자는 “이슈를 선점한다고 말을 얹고 업계 현장에 찾아갔다가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질타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라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우려도 감지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과세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데, 정치권이 말 얹기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4대 거래소 중 2개 거래소만 신고 수리가 완료된 상태다.
이투데이 취재 결과 현재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코인마켓만을 운영하는 거래소에 대한 심사를 사실상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화마켓, 코인마켓을 운영하는 거래소 모두에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심사가 완료되지 않아 국세청에서 예정된 기간 내에 과세 시스템을 시범 운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정치권이 전향적으로 나오는 건 업계에 도움이 되지만, 업권법이나 과세 방식 등 정리가 필요하다”라며 “가상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볼지, 무형자산으로 볼지 취득 원가는 어떻게 정리할지 논의가 꽉 막힌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오는 11일에는 연이어 가상자산 과세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오전에는 김영진 민주당 의원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디지털자산의 합리적 과세방안 토론회’를 개최한다. 오후에는 민형배 민주당 의원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가상자산 업법제정(안)과 과세 계획,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 관련해 여당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세는 아무래도 유예되지 않겠나”라며 “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어떻게 잘 수렴할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