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시기 세계 곳곳의 시민과 기업, 공동체와 지역사회는 각국의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와 여러 형태의 사회계약과 파트너십을 통해 ‘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세 가지 구체적 목표를 위하여 세 가지 모델을 중심으로 실천하였다. 첫 번째 목표는 사회 주변부 영역까지 사회계약을 확대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양한 유형의 불평등을 인식하고 해소함으로써 배제 집단의 실질적 참여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구 행성과 생태 활동,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급 정부, 시민, 기업, 지역사회, 그리고 공동체는 숙의적 거버넌스 모델, 서비스 공동생산 모델, 사회혁신 모델을 중심으로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이행하고 소통하며 협력하였다.
인권, 평등, 그리고 지구 환경이라는 목표는 사실 팬데믹 시기와 상관없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시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가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팬데믹 시기와 이후 더욱 강조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그 이유를 생생히 알게 되었다. 물리적 위생 및 신체적 건강과 더불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은 감염 및 사망 확률을 역진적으로 높인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였다. 더욱이 팬데믹 시기 동안 겪은 이상기온과 기상변동은 미래세대에게 더욱더 역진적일 수 있음을 우리는 뚜렷하게 감지하였다.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 지구 행성에서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사회를 구성할 권리가 미래세대를 포함하여 모두에게 온전히 보장되었더라면 적어도 팬데믹의 장기화는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 역시 절감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발간된 유엔자원활동가 프로그램 보고서는 세계 곳곳의 시민과 기업, 지역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인권, 평등, 지구 환경을 위하여 그리고 팬데믹 극복을 위하여 상호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토착 원주민과 소수자 집단의 의견과 요구를 각종 정책과 예산에 반영함으로써 이들의 인권과 참여, 그리고 지구환경 보존에 기여하였다. 팬데믹을 계기로 자원활동을 처음 시작한 ‘비공식’ 자원활동가들을 포함하여 기업과 시민, 지역사회와 공동체들은 여러 모습으로 인권, 평등, 지구 환경 보존에 기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취약 집단의 백신 접종을 위한 각종 안내 및 지원, 식료품의 대리 구매와 전달, 수제 마스크를 포함한 필수재의 기부, 불안과 공포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 아동청소년, 이민자들에 대한 전화 및 온라인 심리정서 상담과 정보 제공을 들 수 있다.
팬데믹 시기 가장 주목할 만한 사회계약 모델은 인권, 평등, 지구환경을 위한 사회혁신 모델이라 하겠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최신 정보통신기술 환경에서 기업과 시민, 그리고 공동체가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개발하고 수행한 여러 형태의 협력과 연결 모델로서, 캐나다의 디지털 기업인 텔어스(TELUS)와 사회적 기업인 텐씨(10C), 그리고 미국의 디지털 기업인 세일즈포스(Salesforce)와 원자재 기업인 다우(Dow)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가상공간과 SNS를 활용하여 기업의 임직원과 퇴직 임직원들이 지역 주민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시간과 물품을 기부하고, 지역사회 노인과 청년들이 서로 의지할 수 있게 사회적 기업으로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직원들이 플라스틱 폐기물 수거 및 전문적 재능을 기부하고, 기업과 지역사회의 각종 불평등 해소 캠페인과 실천에 참여하였다.
한국사회에서도 재난 시기 여러 형태와 크기의 사회계약 모델이 개발되고 실천되었다. 다양한 챌린지와 크라우드 펀딩, 정보 애플리케이션 등의 사회혁신 모델과 물품 기부 및 전달 서비스 공동생산 모델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숙의적 거버넌스 모델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보인다. 이주민과 소수집단의 의견과 요구를 반영하여 팬데믹 예방과 극복은 물론 건강, 주거, 소득,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을 수립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없다. 팬데믹 시기 필수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보장과 사회적 인정을 위한 거버넌스, 양육과 부양의 책임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을 위한 기업복지 프로그램이나 이를 위한 정책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팬데믹의 장기화라는 비관적인 예감을 떨쳐 버리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