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빈 금융부 기자
금융위원회는 금융사들에 절대적인 존재다. 금융위는 금융에 관한 정책과 제도를 정하는 것은 물론 금융기관 감독·검사·제재에 관한 사항을 결정한다. 금융기관의 설립, 상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기까지 금융위의 인허가가 필요하다. 금융위의 정책적 판단 하나하나가 회사의 흥망에 결정적인 만큼, 그 수장인 금융위원장은 금융사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날 간담회에는 핀테크 기업 관계자 외에도 기존 금융회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재밌던 건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던 핀테크 CEO와 대조적인 모습의 기존 금융사 관계자였다. 그는 위원장의 모두발언을 들으며 해당 발언이 쓰인 종이 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죽죽 긋고 있었다. 모두발언 종이가 펼쳐지지도 않은 테이블과 형광색으로 그은 종이가 놓인 테이블을 번갈아 보면서 기존 금융사와 핀테크의 차이를 실감했다.
은행 등 금융사에서 근무하다 핀테크로 이직한 사람들은 ‘금융사가 핀테크 분위기를 따라갈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은행은 고객의 돈을 다루는 업이기 때문에 회사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경직적이고 수직적인 사내 분위기가 기본값이다. 부장님, 차장님, 대리님 등 직급을 엄격히 지켜 부른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반말하는 게 통상적이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직급이 아닌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여 부른다. 선후배 상관없이 상호 존칭이다. 수평적인 분위기라 아랫사람도 상대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쉽다. 한 인터넷전문은행 대표는 비서도 없다. 그는 자신의 일정을 스스로 챙긴다. 일반 지주나 은행이 비서실 차원에서 회장 또는 행장을 따라다니며 보좌하는 것과 다르다. 그날 간담회는 기존 금융사, 핀테크의 윗사람에 대한 판이한 태도를 보여주는 압축적인 장면이었다.
의견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는 그대로 두고, ‘동일 기능, 동일 규제’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금융사를 보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진다. 물론 ‘동일 기능, 동일 규제’는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다만 상대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은 그대로 둔 채, 무기처럼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을 이용한다면 누구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b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