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78)의 연기가 세계에 통했다.
오영수는 10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시리즈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연기 인생 58년 만에 한국 배우 최초의 골든글로브 연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이번 수상은 지난해 74세의 노장 윤여정이 데뷔 55년 만에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은 기록으로,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는 평가다.
오영수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긴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극 중 참가번호 001번, 뇌종양을 앓는 ‘오일남’으로 등장한 오영수는 목숨 같은 구슬을 이정재(기훈 역)에게 건네며 “우린 깐부(구슬치기 등의 놀이에서 같은 편을 의미하는 속어)잖어”라는 대사로 깊은 울림을 주는가 하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 들자 “이러다 우리 다 죽어!”라고 절규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런 인상 깊은 연기는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고, 그의 대사들은 유행어이자 인터넷 밈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그의 이번 수상이 더욱 뜻깊은 것은 비영어권 국가에 유독 박했던 골든글로브에 처음 진출해 수상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2020년 골든글로브에서 영화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분류돼 작품상을 비롯한 연기상에서 배제됐다. 지난해에는 ‘미나리’가 미국 자본이 만든 미국 영화임에도 한국어로 제작됐다는 이유로 같은 처지에 놓였다.
이날 수상 소식을 전해 들은 오영수는 넷플릭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며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라고 했다.
오영수는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오랜 기간 연극무대에서 활약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부터 극단 광장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87년 국립극단에 들어가 2010년까지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50여 년 동안 ‘리어왕’, ‘파우스트’, ‘3월의 눈’,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그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3년 개봉한 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서 노승 역할로 등장하면서다. 드라마 ‘선덕여왕’(2009)에서 월천대사로 출연하며 ‘스님 전문 배우’로 알려지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큰 인기를 끈 뒤에도 오영수는 대학로 무대에 섰다.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섰다는 그는 현재 연극 ‘라스트 세션’의 ‘프로이트’를 연기하고 있다.
한편,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코로나19 변이 확산 여파로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시상식도 생중계 없이 홈페이지에 수상 내역만 공지됐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극영화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과 남우조연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 뮤지컬 연출작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작품상을 받았다. 최우수 애니메이션은 ‘엔칸토’가, 외국어영화상에서 이름을 바꾼 비영어 부문 작품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