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심을 모았던 20대 대선후보 ‘4자 TV토론’을 마쳤습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지만 관심도만은 역대 최대입니다. 이번 토론회 시청률이 지난 1997년 치러진 15대 대선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인데요. 초접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대선 상황을 고려했을 때 TV토론은 대선주자들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대선후보들은 토론회 직후 질세라 ‘자화자찬’에 나서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만한 ‘한 방’을 선사한 후보는 없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오히려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이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RE100에 대응할 건가”라고 질문하자 윤 후보가 “RE100이 뭐죠?”라고 되물은 것을 두고 RE100을 아냐 모르느냐로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인데요. 국민도 “전문용어인 RE100을 모르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라는 의견과 “‘기후위기 시대’를 끌어갈 대선후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의견이 맞붙으면서 시끌시끌한 상황입니다.
RE100이란 기업이 활동에 필요한 전력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해양에너지, 지열에너지, 바이오에너지 등과 같은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글로벌 캠페인을 말합니다. 지난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시작했는데요.
애플, 구글, 메타(페이스북), 나이키, 스타벅스, 에어비앤비, 3M, 샤넬, 듀퐁, BMW, 소니, 이베이, 화이자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349개 글로벌 기업이 RE100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SK와 삼성, LG, 한국수자원공사, KG금융그룹 등이 RE100에 참여하고 있죠.
RE100에 참여한 기업들은 전 세계 거래 상대에게 RE100 목표 이행을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요건에 맞지 않으면 거래를 단절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가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는 회사라면 부품 공급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KDI 공공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공동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RE100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반도체 수출액이 31%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기업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적절한 가격에 재생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이에 우리 정부도 지난해부터 K-RE100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RE100’과 함께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도 언급됐는데요. 이 후보가 “EU 택소노미가 중요한 의제인데 원자력 관련 논란이 있다. (윤 후보가) 전문가에 가깝게 원전을 주장하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물은 것이죠.
사실 이런 용어들이 일반인들에게 낯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선후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 후보에게 ‘기후 문제’는 중요합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수출중심의 경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이죠.
이에 기후 관련 정책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8월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1%가 20대 대선 과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중요한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4명의 후보들도 ‘탄소중립’이라는 큰 틀에 동의하며, 저마다의 공약을 내걸었는데요. 이 후보는 석탄 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신규 원전은 추가하지 않는다는 '감원전'을 내세웠습니다.
윤 후보는 새 원전을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하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간 1700만 톤씩 줄여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50년까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70% 이상으로 늘려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주요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기후 대선'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공약에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후보들이 공약(空約)이 아닌 실제 이행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4명 후보는 공론의 장에 참여해 구체적인 공약과 비전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