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가족·부패 연루 정치인 등 비밀계좌 소유
필리핀 인신매매범 등 범죄자도 포함
CS는 보도 내용 즉각 부인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194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CS에 개설된 비밀계좌 1만8000여개를 분석한 결과 이용자는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보도는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독일 매체 쥐트도이체차이퉁(SZ)에 은행 계좌 관련 데이터를 전달한 것이 계기가 됐다. SZ는 내부고발자가 넘긴 해당 문건을 미국 NYT,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등 전 세계 46개 매체가 참여한 비영리 단체 ‘조직범죄·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에 공유했으며, 이 단체가 공동 분석한 결과가 이날 보도됐다.
분석 결과 비밀계좌 이용자 중에는 이집트를 30여 년간 통치했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두 아들인 알라 무바라크와 가말 무바라크가 있었다. 이들은 CS에 총 6개의 비밀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중 2003년에 개설한 계좌에는 1억9600만 달러(약 2336억 원)가 들어있었다. 요르단의 국왕인 압둘라 2세도 총 6개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보유 계좌 중 하나에는 2억2400만 달러가 들어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수반이나 유력 정치인 외에도 각종 범죄자도 비밀계좌의 고객이었다.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인 PDVSA의 부패 스캔들과 관련된 고위 정치인은 무려 CS에 25개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약 2억7000만 달러가 예치돼있었다. 짐바브웨 최장기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과 연관돼 미국와 유럽 당국으로 제재를 받았던 짐바브웨 현지 사업가도 CS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에 수십억 달러의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도운 파키스탄 전 정보기관 수장과 필리핀의 인신매매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홍콩증권거래소 관계자 등 다수의 범죄자도 포함됐다.
NYT는 이번 자료를 분석하면서 CS가 직원들로 하여금 재정과 관련한 고객의 불법적이고 의심스러운 활동을 보고하도록 했지만, 계좌는 그대로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의 자금세탁방지기관 책임자는 스위스 은행들이 범죄활동과 관련된 자금을 수탁하는 것이 오랫동안 법적으로 금지됐으나, 해당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CS는 즉각 해당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은행은 대변인 성명을 내고 “이 보도는 맥락에서 벗어나게 발췌된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어 편향적 해석을 낳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보도에 인용된 계좌 중 일부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고, 전체의 60%가 2015년 이전에 폐쇄되는 등 전체의 90%가 이미 폐쇄됐다”며 “스위스 금융시장 개혁에 따라 CS는 금융 범죄 퇴치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했고, 지난 10년간 중요한 조치들을 해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