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총재 "연말 기준금리 1.75%~2.0%에 이를 것이란 시장 기대 합리적"
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3.1%로 대폭 올려잡은 건 치솟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을 반영한 결과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고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2014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3%대에 올라선 이후 11월(3.8%) 12월(3.7%), 올해 1월(3.6%) 등 4개월 연속 3%대를 지속 중이다.
한은은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상당 기간 3%를 웃돌 것으로 봤다.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올해 안에 2%대 중반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근원물가가 오른다는 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국제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석유제품 등 일부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3개월 만의 물가 전망치 수정에 대해 “짧은 기간에 물가 상승 확산 정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공급측 요인뿐 아니라 수요측 요인이 확대된 점도 반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기 회복 등으로 국제유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커진 점도 고려해 물가상승률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산하면 충격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전면전으로 간다면 곧바로 원자재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고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서방이 경제 제재 수위를 상당히 높이면 글로벌 교역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국내 생산과 수출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큰 폭의 물가 상승률 상향 조정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3.0%)는 지난해 11월 전망과 같았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국내 경제가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에도 글로벌 경제활동 재개 지속, 국내 방역 조치 완화 기조 등에 힘입어 양호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부문별로 보면,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는 3.6%에서 3.5%로 낮아졌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성장률 역시 기존 2.4%, 2.6%에서 2.2%, 2.4%로 각 0.2%포인트씩 떨어졌다. 하지만 상품 수출과 수입 증가율은 3.4%, 3.8%로 기존 2.6%, 3.1%에서 0.8%포인트, 0.7%포인트씩 상향 조정됐다.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는 81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14% 감소했다. 유가 등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작년 11월 당시보다 더 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규모는 25만 명에서 28만 명으로 늘었고, 실업률은 3.6%로 유지됐다.
이날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연내 2~3차례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총재는 “그간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조정해 온 만큼 지금은 주요국의 통화정책 방향,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여건 변화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필 시점”이라고 동결 배경을 밝혔다.
이후 질의응답에서 ‘추가 금리 인상이 얼마나 더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1.5%로 앞으로 한 차례 더 올라도 긴축으로 볼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연말 기준금리가 연 1.75%에서 2.0%에 이를 것이란 시장 기대가 적정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합리적인 경제 전망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번 회의는 이주열 한은 총재의 임기 마지막 금통위였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의 방향을 트는 결정은 항공모함을 운영하듯 신중히 해야 한다”며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일을 안 하는 것 같다는 말도 있는데 동결도 똑같이 신중하고 중요한 의사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원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미 정치 이슈화됐다”라며 “아무리 경제적인 측면에 입각해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나타낼 수 있어 답변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