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헌재라고 종부세 합헌, 보수라고 위헌은 어려워"
헌법재판소(헌재)는 시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 효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 대통령, 장관 등에 대한 탄핵 심판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있고, 행정기관 간 권한 다툼에서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그만큼 가진 권한이 막강하다. 법조계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헌법재판소 구성원 성향은 물론 결정 방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봤다.
헌재는 헌재소장과 8명의 헌재 재판관(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다.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201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헌법재판관은 국회가 3명(여당 1명·야당 1명·합의 1명)·대통령이 3명·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절반 이상의 인사에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임기가 끝나는 이석태 헌법재판관은 법관 출신 일색인 현 헌재 구성에서 유일한 변호사 출신이다. 이 재판관의 임기는 올해 4월까지로 후임 임명에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투데이가 만난 법조계 전문가들은 대통령 후보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헌재 구성원 성향이 달라진다면서도 헌법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 임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헌법재판관 출신 안창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대통령이 대법원장 선임을 하면 아무래도 성향이 같은 사람을 하지 않겠느냐"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3명을 뽑기 때문에 (헌재가) 대통령의 성향에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도 "헌법재판관에 대통령이 미치는 영향은 대법원에 비해서는 제한적"이라면서도 "아무래도 자신을 임명해 준 사람 혹은 추천한 정당의 정책 노선 등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헌재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보면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을 때 각각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이 후보든 윤 후보든 당선되면 자신의 취향대로 헌재를 구성할 것"이라면서도 "이 후보를 진보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후보의 임명으로 구성된 헌재가) 진보적 결정을 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구분을 버려야 한다"면서 "이 후보는 진보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챙기는 기득권"이라고 평가했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검찰 출신 헌법재판관이 늘어날 것 같냐는 질문에 노 변호사는 "지금은 검찰 출신 헌법재판관이 한 명도 없지만 다양성을 위해서 검찰 출신 한 명 정도는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법원과 달리 헌재는 이념·가치가 좀 더 다양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50대·남성·판사 출신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관 출신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데 대한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헌법재판관 출신인 A 변호사는 "경험이 다양해지면 좋기는 하겠지만 적임자를 어떻게 찾느냐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2018년 6월 대체 복무제를 병역 종류로 규정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시민사회가 헌재에 결정을 요구한 지 세 번째 만에 나온 새로운 판단이다. 2019년 임신중단을 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 1항과 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70조 1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 역시 마찬가지다.
A 변호사는 해당 결정들에 대해 "대통령이 진보적 생각을 하고 그런 성향의 헌재소장을 임명했다면 이러한 결정을 하는 데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복적으로 헌재의 판단을 받았던 사형제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한 결정은 어떻게 바뀔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2019년 헌법소원을 제출해 헌재는 현재 사형제도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A 변호사는 "헌재는 사형제는 입법의 문제라고 이미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 110조는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단심으로 할 수 있지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면서 "헌법이 사형제 자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뛰어넘는 논리를 만들지 않는 한 위헌 결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법무법인 로고스는 종부세 위헌 집단소송인단을 모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해당 소송에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노 변호사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 헌법재판관 구성을 바꾸느냐에 따라 종부세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며 "합헌·위헌이라고 칼로 두부 자르듯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선을 넘는 것은 과도하다 정도의 결정은 할 것"이라고 봤다. 이어 "진보적 헌재라고 종부세 합헌, 보수라고 위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