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냐 제재회피냐...러시아 사업 놓고 웃픈 글로벌 기업들
7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면서도 “의류는 생활 필수품이며 러시아인도 우리와 같이 살 권리가 있다”며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에서 4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니클로는 지난 4일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1000만 달러와 의류 20만 벌을 유엔난민기구(UNHCR)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시장을 지킨다는 유니클로의 결정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 동종업계의 움직임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스웨덴 패션업체 ‘H&M’과 ‘ZARA’를 가진 스페인 인디텍스는 러시아에서 의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외에 나이키와 이케아, 애플, 넷플릭스, 월트디즈니,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초반부터 러시아와의 사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를 선언한 기업은 200개가 넘는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집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사업 철수와 축소를 표명한 주요 기업은 230개를 넘었다.
미국 뉴욕주 연기금의 회계감사는 지난 4일 맥도날드와 펩시코, 화장품 대기업 에스티로더 등 투자처에 러시아 사업을 중지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컴플라이언스(법령 준수)와 인권, 평판 등의 리스크를 꼽으며,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러시아를 비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사업 중단 결정에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러시아에서의 서비스·제품 제공 중단 요구를 받았다. 메이저 정유업체 셸은 러시아에서 원유를 계속 들여온 사실이 밝혀지자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으로부터 “러시아산 원유에서 우크라이나의 피 냄새가 나지 않는가”라며 노골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등은 7일 시점에 러시아 사업에 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러시아 국내에서 약 700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코카콜라는 10개의 음료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벅스와 KFC의 러시아 매장은 프랜차이즈점 위주여서 영업을 계속할지 판단은 현지 운영사에 결정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 중 유니클로가 러시아 국내 50개 매장 영업을 계속한다고 하자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온다. 유니클로의 남다른 뚝심에 8일 오전 패스트리테일링의 주가는 5만9950엔으로, 전날보다 760엔(1.25%)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에 대해 “ZARA를 운영하는 인디텍스가 러시아 전점을 폐쇄한 것과 대조적인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와 혼다가 러시아 생산과 수출을 멈춘 반면, 일본담배산업(JT)은 사업을 계속하고, 미쓰비시상사와 미쓰이물산도 석유·천연가스 프로젝트에서 철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정부는 7일 정부령을 통해 자국과 자국 기업, 러시아인 등에 비우호적 행동을 한 국가와 지역 목록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국과 미국, 영국, 호주, 일본,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대만, 우크라이나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 정부는 비우호국가 목록에 포함된 외국 채권자들은 외화 채무가 있는 러시아 정부나 기업, 지방정부, 개인들로부터 채무를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상환받게 하고 있다. 이는 서방 국가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배제한 데 따른 것. 비우호국가들에 대한 제재 가운데 하나로 풀이된다.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조치로, 비우호국가 기업은 러시아에서의 사업을 계속하는 데 장애물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러시아는 석유·천연가스에 더해 밀 등의 농산물, 팔라듐이나 백금, 티타늄, 니켈 등 중요한 광물의 주요 산지이기도 하다. 자동차와 식품 메이커들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끊었을 경우 공급망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놓고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