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00조 도전하는 삼성
1990년대 노어플래시 대세에도
대용량화 쉬운 낸드플래시 진출
독자 사업부 전환 기술 유출 차단
'반도체 2030' 실현 속도
올 미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착공
평택 3라인과 핵심 생산기지로
3나노 제품 등 신기술 개발 박차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리며 39년 만에 연매출 100조 시대에 도전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으론 강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빠른 결단과 과감한 투자가 꼽힌다. 사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변곡점마다 의사결정을 지체하지 않고 밀어붙였고, 이는 훗날 반도체 ‘초격차’를 만드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았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면서도, 적기에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도 주효했다.
대표적으로 사업 초창기 D램에 집중하다, 1990년대 중반 낸드플래시 사업에 진출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반도체 업계에선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비휘발성 플래시 메모리’를 차세대 사업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었다. 인텔과 AMD 등 주요 업체는 노어플래시에 집중했지만, 삼성전자는 대용량화가 용이한 낸드플래시를 택했다.
디지털카메라와 MP3플레이어, 게임기 등 상대적으로 고용량 모바일기기 시장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삼성의 선택은 적중했다. 삼성전자는 2002년 세계 최초 2기가비트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며 낸드플래시 시장 세계 1위에 올랐고, 플래시 메모리 시장 내 낸드와 노어 패권싸움 승패도 낸드플래시 쪽으로 기울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도 발을 디딘다. 2017년 설계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해 독자 사업부 체제로 전환했고, 2019년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기술 확충에 총 133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를 비롯한 비메모리 사업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도 선언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650조 원을 넘는 규모의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7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다.
‘반도체 비전 2030’을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도 부쩍 빨라졌다. 지난해 투자가 확정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20조 원 규모 파운드리 공장은 2024년 하반기 생산을 목표로 올해 상반기에 착공한다.
테일러 공장은 5G, HPC(High Performance Computing), AI(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를 취급한다. 평택 3라인과 함께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핵심 생산기지인 셈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꾸준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1세대 파운드리 제품을, 2023년에는 3나노 2세대 제품 양산을 각각 시작할 계획이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칩 면적은 줄이고 소비전력은 감소시키면서도 성능을 높인 신기술이다.
물론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대만 TSMC는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시설투자에 쏟아부으며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고,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전담조직을 따로 만드는 등 파운드리 사업 확대에 적극적이다.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현재 삼성전자가 TSMC를 추격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TSMC를 능가하는 기술력 확보가 필요하다”며 “인텔, 엔디비아 등 주요 고객사들에 앞선 기술력과 이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는 캐파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총수가 공격적 경영 활동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 출소하긴 했지만, 매주 열리는 재판과 취업제한 등의 제약 상황을 고려하면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자체적 노력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미국·중국·대만 등은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고 국가 안보로 여겨지는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장은 “국내에서도 반도체 인력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무엇보다 ‘신격차’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효율성을 높일 ‘마스터 플랜’ 구축이 절실하다”며 “미래 기술을 갖춘 기업을 선별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