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이전을 둘러싸고 차기 정권과 산업은행 간의 찬반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금융 중심지의 경쟁력 강화 가능성, 지역 균형 개발 가능 여부, 산업은행 인재 확보의 어려움, 업무 부담 증가 등 사안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산업은행 이전을 찬성하는 측에선 지역균형개발을 위해 본점 이동은 필요한 만큼 산업은행이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우기보다 금융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산업은행의 본점 이전은 정치적인 결정일 뿐 지역균형발전과 부산의 금융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정부의 금융중심지 정책에 따라 서울과 부산은 국제 금융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3월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은 작년 9월보다 1단계 상승한 12위를 기록했으며, 부산은 3단계 상승한 30위를 기록했다. GFCI는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Z/Yen)사가 지난 2007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국제금융경쟁력을 평가하는 지수다.
산업은행의 이전을 찬성하는 측은 산업은행의 합류로 부산의 금융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1차 공공 금융기관 이전을 통해 BIFC(부산국제금융센터) 건립 등 일정 금융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더해진다면 본격적으로 부산이 세계 금융 중심지로 도약할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당장 금융 중심지 경쟁력만을 따진다면 부산이 당연히 서울보다 선진화, 국제화 등이 부족할 수는 있으나 산업은행 이전으로 관련 금융회사, 투자사 등이 부산으로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단 입장이다.
이전을 반대하는 측은 인위적인 국책은행 이전으로는 금융 중심지 경쟁력을 강화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한다. 부산이 특화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지만, 외국 금융사 몇 군데를 제외하면 국내 시중은행 본점 이전은 한 곳도 이뤄지지 않은 허울뿐인 금융 중심지라는 것이다.
대다수 국제금융회의가 여전히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금융 도시 역할이 서울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굳이 부산으로 이동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성만 저하시킬 뿐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독일,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 등 다른 국가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은 제1 금융중심지에 소재하고 있고 강제로 국책금융기관을 이전하거나 이전하려고 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금융경제연구소의 ‘국책은행 지방이전의 타당성 연구’ 보고서는 “주요국 정책금융기관은 변화하는 세계 경제와 정치, 사회체계에 맞게 새로운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는 현실에서 한국만 정책금융기관의 본점 소재만을 논의하고 있는 현상은 오히려 우려스럽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은행 등 공공 금융기관의 물리적인 이전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에선 정책금융 기관의 확충으로 지역개발 금융 플랫폼, 산업구조 및 지역경제 갱생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동남권 기업에 대한 지원이 본격화되며 지역 기업의 발전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정책금융의 70%가량을 집행하는 산업은행이 동남권 기업에 지원을 강화한다면 기업들의 성장세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전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산업은행이 동남권을 위한 은행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또, 지방균형발전이 목적이면 꼭 ‘부산’을 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부산 지역에는 부산은행, 경남은행이 있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가서 기업 지원을 해야 하나”라며 “해당 지역에 이미 본부와 지점이 있어 충분히 부·울·경 지역 기업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원·충청 지역에는 지방은행조차 없는 상황에서 지역균형발전을 하기 위해 부산으로 콕 집어 가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똑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는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는 물리적인 이전 대신 지역 특화 펀드 개발이나 지역개발금융의 플랫폼 자체를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의 본점 이전은 업무 효율성 저하와 인재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의견은 갈린다.
산업은행의 이주를 찬성하는 입장에선 업무 효율성 저하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비대면 업무가 활성화된 상황이고 서울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꼭 필요한 업무라면 사무소 형식으로 서울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력 역시 초기에는 이탈이 있을 수 있으나, 향후 지역 인재 선발 등을 통해 충분히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이전 반대 측은 산업은행 이주에 따른 지방 인구 증가가 지방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직원들의 저조한 이주율, 지역인재 수급 문제, 출장 증가, 산업 경쟁력 저하 등으로 인한 업무 비효율성 같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상장사 중 72.3%의 본사가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고, 금융 관련 전문서비스 지원기관 역시 서울에 70% 이상이 몰려 있다.
단순히 인력 공백이 생기는 것이 아닌 업무 마비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전 반대 측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투자금융의 경우 '산업은행'의 이름이 아닌 '개인'의 거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어 이 직원들이 이탈할 경우 대규모 거래를 놓치는 등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전을 반대하는 측은 코로나19 장기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이전한다면 국내 산업·기업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는 ‘시장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