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퇴임… 이창용 후보자에 대해선 " 빼어난 인품ㆍ뛰어난 식견을 갖춘 분"
"중앙은행의 유일한 존립기반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라는 점을 되새기며 첫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 운용을 통해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나라 통화정책 수장을 맡았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1일 이임사를 통해 "말한대로 행동하는 언행일치의 기록이 쌓여야 신뢰가 구축되는 이치"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주열 총재는 "정책의 출발은 항상 시장과의 소통이었으며, 정책결정의 적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시장참가자와의 인식의 간극을 줄여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시장과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의 의사전달이 충분했는지, 그래서 신뢰가 온전히 형성됐는지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저명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가 경제전망을 점성술에 비유한 부분을 언급하며 통화정책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 총재는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코로나 위기 이후 경제예측이 어긋나고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졌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역시 높은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신뢰가 통화정책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중앙은행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장기간 이어졌음에도 세계 경제가 저성장·저물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은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며 "좀처럼 풀리지 않은 이러한 수수께끼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더 복잡해지고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돼 버렸다"고 털어놨다.
이어 "가계부채 누증 등 금융불균형이 심화되고 금융위기 이후 사라져 버린 줄로 알았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나타나면서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또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성장을 지키면서도 금융안정과 함께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시대적 변화에 걸맞은 유연한 사고만이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이 총재는 "앞으로 여러 가지 사회문제 해결에 경제적 처방을 동원하고자 하면 할수록 중앙은행에 대한 기대와 의존은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구조나 제반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게 되면 중앙은행 역할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으로서의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앞으로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지 깊이 있는 연구와 논의가 이뤄져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내부경영 관련해선 "성과도 분명 적지 않았지만,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 직원들이 약 2년간의 노력 끝에 조직·인사 혁신방안의 밑그림을 그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실행해 나갈 것인가는 이제 새 총재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게 됐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대해선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다음 총재로 지명되신 분은 빼어난 인품과 뛰어난 식견을 갖춘 훌륭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라 생각한다"며 "새 총재님의 풍부한 경륜이 여러분들의 열정과 결합돼 한국은행이 더욱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한 뒤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 부총재 등 주요 보직을 모두 거친 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총재로 임명됐다. 4년 뒤 2018년 문재인 정권에서 연임에 성공했는데, 한은 총재가 연임한 것은 2대 김유택(1951∼1956년), 11대 김성환(1970∼1978년) 총재에 이어 역대 3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