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리스크 진단, 미국 인플레이션부터 초점…은행시스템 취약한 국내 시장엔 불리”
“2008년 주담대 원리금 만기 장기화 때와 달라…단기 대출 비중 큰 현재 리스크 더 크다”
“대출 총량 규제, 美 통화량 규제 개념…명목 GDP에 증가율 맞추려는 당초 취지 이해 필요”
금융시장에서 가계부채는 늘 숙제다.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가격 급등과 함께 가계 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출범을 한 달 반가량 앞두고 있는 차기 정부의 고민도 가계대출 관리에 쏠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가 주춤하니 대출 규제는 이제 좀 풀어주자는 게 인수위(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방향이다.
지난 28일 이투데이와 만난 서영수<사진>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이사는 가계부채 문제를 여느 때보다 가볍게 다루면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해외 경제 리스크가 변화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 같은 흐름은 국내 시장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서 이사는 리스크의 시작을 미국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시작했다.
서 이사는 “지금은 그냥 평범한 상황이 아니다. 어찌 보면 거의 2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의 시대에서 인플레이션의 시대로 바뀌는 거예요. 저금리 시대, 돈을 많이 푸는 양적 완화 시대에서 고금리 시대로 바뀌는 거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런 변화의 흐름이 슬로우 스텝이라면 그나마 대처를 할 텐데, 지금은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전제를 안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 이사는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에서 금융 부문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굿모닝증권(현 신한금융투자), 대우증권, 한누리투자증권(현 KB증권)에서 근무했다. 2006년부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지난 2019년 발간한 ‘대한민국 가계부채 보고서’로 이목을 끌었다.
서 이사는 가계부채 리스크 진단의 시작점을 미국 인플레이션으로 초점을 맞췄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9%를 웃돌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려는데, 이 같은 통화정책은 국내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결국 대출 금리도 오르고, 이는 곧 차주의 상환 여건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서 이사는 “이미 개도국인 이집트, 스리랑카 등 일부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나아가 스페인, 이탈리아 등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 위기, 최근 5년간 선진국 중에서 민간 부채 기준으로 부채를 가장 많이 일으킨 국가가 한국이다. 은행 시스템이 취약한 국내 금융 시장에서 이 같은 변화는 리스크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서 이사는 현재 가계부채 리스크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출 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서 이사는 “2008년 당시 상황은 해외가 굉장히 나빴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잘했던 금융정책이 주택담보대출로만 집을 살 수 있도록 한 거였다. 지금처럼 갭투자 등으로 집을 사는 게 쉽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주담대의 만기를 15년 이후로 미뤘다. 만기를 장기화하다 보니 금융위기 과정에서 부채 위험이 가계부채 리스크로 전염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서 이사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은행들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당금에 대한 조언은 최근에 직접 편찬한 ‘2022 피할 수 없는 부채 위기’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현재 회계기준과 감독 기준은 금융회사의 과거 데이터(연체 발생률, 회수율 등)을 바탕으로 예상 가능한 손실률을 추정해 대손충당금과 추가 자본을 적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 이사는 “국내 은행들의 전체 여신 대비 충당금은 전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다”라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바젤Ⅲ로 바꾸게 되고 그다음에 IFRS9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IFRS9은 객관적 증거가 있을 때만 충당금을 인식하도록 했던 기존의 발생손실이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까지 인식하도록 하는 예상손실을 적용해 충당금을 쌓는 것이다.
서 이사는 가계부채 총량관리가 필요한 이유와 대출 규제를 강화해 금융 안정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서 이사는 “대출 총량 규제는 미국에서 말하는 통화량 규제로 볼 수 있다”라며 “통화량 증가율을 명목 GDP 수준에 맞추자는 게 취지다. 그러면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발생도 막을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총량 관리를 안 해도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대출 수요가 줄고 있어서 굳이 지금 총량을 관리해야 하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내외 리스크 우려가 커진 만큼 가계대출은 완화가 아닌 관리 기조로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 이사는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글로벌 환경으로부터 엄청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선택할 카드가 없는데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 이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금융안정보다는 경기 부양 중심으로 금융·부동산 정책이 변경될 경우 은행에 대한 정책 기조도 변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대출 총량 규제에서 대출 가격(금리) 규제로 규제 방식이 전환되고, 충당금 강화 중심의 건전성 규제에서 배당 제한 등과 같은 자본 규제로 전환될 것으로 내다봤다.
끝으로 서 이사는 금융 안정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 이사는 “금융 안정에 대해 개념을 갖고 고민을 해야 한다. 국내에 은행 전문가를 찾기 힘든데 은행 전문가가 필요하다”라며 “금융은 불편해야 한다. 그 대가로 우리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거다”고 말했다. 금융 시장 육성책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금융 안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