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비양극화가 심화하고 집콕으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먹거리 고급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과거 정크푸드로 여겨지던 햄버거, 샌드위치 등이 프리미엄 옷을 입고 속속 등장하면서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햄버거, 명품 레스토랑에서 한정으로 파는 음식 등 업계에 부는 고급화 트렌드도 거세지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례 없는 엥겔지수 상승 여파에 먹거리 고급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심은주 하나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 ‘식품 소비 양극화’ 트렌드를 생성시키고 있다”라면서 “가성비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늘었지만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국내 엥겔지수는 12.86%로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현대경제연구원 발표). 엥겔지수는 전체 가계지출에서 식료품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먹거리 지출 양극화가 심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급화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국내 햄버거 시장이다. 과거 햄버거는 고칼로리에 학생들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한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이미지가 강했으나 수제버거의 등장 이후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고급 식재료와 브랜딩을 접목한 제품을 속속 내놓으면서 ‘요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리미엄의 스케일도 화려하다. 2016년 SPC삼립이 론칭한 ‘쉐이크쉑 버거’는 기존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등이 차지하고 있는 국내 시장에 프리미엄화를 불러일으키며 ‘햄버거 1만 원 시대’를 사실상 열었다면 최근에는 ‘고든램지 버거’,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먹는 걸로 전해진 ‘굿 스터프 이터리’ 햄버거, 구찌 레스토랑에서 한정으로 파는 ‘구찌버거’까지 국내에 상륙하면서 10만 원이 훌쩍 넘는 햄버거도 등장하고 있다.
웰빙 트렌드에 힘입어 샌드위치도 고급스러워졌다. 써브웨이를 필두로 SPC그룹이 들여온 에그슬럿에 이어 최근에는 뉴욕 샌드위치 브랜드 ‘렌위치’까지 서울 여의도 IFC몰에 1호점을 열었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던킨은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뉴웨이브 프로젝트’를 선언하며 브런치, 고메 수제도넛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던킨 라이브’ 매장을 지난해 선릉역점에 이어 지난달 건대역에 추가로 열었다. 특히 다양한 미식 경험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선보인 ‘고메 도넛’ 시리즈는 현재 16종으로 ‘에그 베네딕트 도넛’, ‘브런치 도넛’ 등 도넛의 고급화를 꾀한다.
가정간편식(HMR)을 통해 식탁 먹거리의 고급화에 앞장서는 곳은 CJ제일제당이다. 즉석밥 선두주자로 꼽히는 ‘햇반’은 고구마, 밤, 연근 등 원물을 담아낸 3세대 즉석밥 ‘햇반솥반’으로 진화했고, 2020년 냉동 프리미엄 피자 시장에 도전장을 낸 ‘고메 프리미엄 피자’는 출시 1년 만에 300만 판이 팔려나가며 안착에 성공했다.
‘서민 먹거리’ 하면 떠오르는 소주, 막걸리도 프리미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오픈런 현상을 빚은 원스피리츠 대표 박재범의 ‘원소주’는 1만 원을 훨씬 웃도는 프리미엄 증류주다. ‘롤스로이스 막걸리’로 유명한 해창주조의 막걸리는 병당 10만 원이 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전남 해남의 해창주조장이 내놓은 ‘해창 18도’는 허영만 화백이 막걸리 라벨에 1920년대 롤스로이스를 그려넣어 ‘롤스로이스 막걸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생활수준 상승에 따른 먹거리 고급화 바람은 자연스러운 트렌드지만, 어설픈 프리미엄화 시도는 자칫 소비자 반발을 불러올 우려도 있다. 대표적으로 하림은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주역 이정재를 모델로 내세워 닭고기 육수, 건면 등 프리미엄 콘셉트의 '더미식 장인라면'으로 라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2200원(1봉)이라는 비싼 가격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