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정부는 12일(현지시간) 약 510억 달러(약 62조9000억 원)에 이르는 대외 채무 일부 지급을 일시 정지한다고 발표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스리랑카가 디폴트에 빠진 건 1948년 독립 이후 처음이다. 스리랑카는 구제금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지만 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스리랑카의 디폴트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중국 등에서 인프라 정비를 이유로 거액의 자금을 빌려 재정난에 빠졌고, 설상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 이 여파로 주요 외화벌이였던 관광업이 타격을 받았다. 결국 달러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식량난과 전력난으로 이어졌다.
금융자산 가격도 올 들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주요 주가지수는 연초 이후 30% 이상 하락했고, 통화인 스리랑카루피 가치도 2월 말 대비 30%나 떨어졌다. 장기 국채 수익률도 상승(채권 가격은 하락)하는 등 삼중고를 겪었다. 여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자금 유출이 심각한데, 수입 물가 상승 등이 겹쳐 경제와 정정 불안도 심각해졌다.
스리랑카 정부는 IMF에 긴급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해외에 손을 벌릴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스리랑카가 중국에서 25억 달러의 재정적 지원을 해줄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팔리타 코호나 주중 스리랑카 대사는 지난주 중국 당국으로부터 대출 보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리랑카가 7월 만기가 도래하는 기존 중국 차관을 상환할 수 있도록 중국에서 10억 달러를 빌리고, 의류 수출산업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섬유 등 중국의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15억 달러의 신용한도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며 정확한 일정과 자금 지원 조건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며 “중국은 매우 빠르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만 했다.
중국은 스리랑카와 오랫동안 호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은 스리랑카에 있어서 국제결제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돈줄이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도로, 공항, 항구를 포함한 인프라 프로젝트용으로 스리랑카에 50억 달러 이상을 빌려줬다. 아울러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중국은 스리랑카의 최대 관광고객이었고, 중국산 수입 의존도도 높다.
무엇보다 스리랑카는 중국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기반 시설에 자금을 지원하고 건설하기 위한 장기 계획인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핵심 부분이다.
그러나 중국은 스리랑카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신용 지원을 요청했으나, 아직 답신을 받지 못한 상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니시하마 도오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스리랑카가 디폴트에 빠지면 스리랑카가 거액의 빚을 지고 있는 중국의 간섭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