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산업이 이런 식으로 주주를 배신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모씨(50)는 동원산업의 안정적인 매출, 튼튼한 자회사 등을 보고 5억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최근 동원산업이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한다고 발표하자 주가는 떨어졌다. 이 탓에 이씨의 현재 수익률은 -26%다. 그는 “동원산업은 국민이 오랫동안 사랑해서 커 온 기업”이라며 “대주주 지분이 많은 기업(동원엔터프라이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적은 기업(동원산업)의 가치는 낮게 평가하는 건 결국 대주주의 (동원산업) 지분만 더 늘어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동원산업 합병 관련 소액 주주 집회’에는 이씨와 같은 동원산업 주주들이 모였다. 이번 집회는 지난 7일 동원산업의 흡수합병 발표로 촉발됐다. 합병 발표 다음 거래일 동원산업 주가는 14.15% 급락했기 때문이다.
동원산업에 흡수합병되는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 그룹의 지주회사다. 동원산업은 물론 동원F&B, 동원시스템즈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동원그룹은 이번 합병으로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가 합쳐지면서 동원산업이 지주회사로 오르고,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사라진다. 즉 동원산업이 동원F&B, 동원시스템즈를 자회사로 두게 되는 구조다. 문제는 합병 비율(동원산업:동원엔터프라이즈=1:3.838553)이다. 상장사(동원산업)와 비상장사(동원엔터프라이즈)가 합병할 때 상장사의 가치는 자산가치 또는 기준시가로 평가한다.
기준시가란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 일의 종가 등을 산술평균한 가액이다. 이씨를 포함한 한국주식투자연합회(한투연)는 동업산업 이사회가 합병 시 유리한 자산가치가 아닌 불리한 기준시가를 택했다고 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동원산업을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면 38만2140원이나, 기준시가로 산정하면 24만8961원이다.
이날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을 무시하고 대주주 오너에게 유리한 합병을 강행하고 있다”며 “자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기업가치는 올리고, 기존의 동원산업 기업가치는 낮추는 불공정한 기준으로 합병을 진행하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이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 68.27%를 보유하고 있다. 이 합병 비율이 유지된다면 김 부회장은 합병으로 동원산업 주식 48.43%를 보유하게 된다.
정 대표는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대기업의 소액 주주 재산권 침해 행위를 (이제는) 종식하고 공정한 주식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돈을 벌고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그런 시대를 앞당기려면 이런 불공정행위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거래소는 동원엔터의 우회상장 신청서를 즉각 반려해야 한다”며 “대주주, 지배주주의 탐욕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시대를 만들어 거래소는 대주주가 아닌 일반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동원산업은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을 결정하면서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관련해 한국거래소에 우회 상장 예비 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회상장 심사는 거래소 상장규정에서 정하는 재무요건 충족 여부, 감사의견, 소송계류 사항 등이 검토 대상”이라며 “주권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간의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기 외부평가(회계법인) 의무 부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한투연과 같은 개인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경제개혁연대와 같은 시민 단체도 이번 합병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근 경제개혁연대는 동원산업 이사회에 △합병으로 얻게 될 시너지 등 합병의 구체적인 목적 △회사에 유리하지 않은 기준시가를 적용할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합병가액을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재조정할 의향이 있는지 등의 내용을 담은 질의서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