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 디지털미디어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기 전까지만 해도 기술이 인류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상과학소설(SF)에서 익히 보던 것처럼 말이다. SF에서 로봇, 인공지능(AI)은 주로 인간에 대한 위협, 일자리 파괴자, 클라우드를 조종하는 어둠의 지배자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우리는 그 반대를 경험했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최근 미국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실업자 수보다 일자리 수가 거의 500만 개나 많고, 지난해 11월에는 사상 최대인 450만 명이 직장을 그만뒀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제조 공정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로봇이 서빙과 요리, 배송까지 담당하게 됐는데, 이들이 현장에서 활약하는 동안 인간은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현재 인류에게 AI란 SF에서처럼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침략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켜 주는 도구이자 동료가 된 셈이다. 이들이 더 강력한 인류의 동료이자 조력자가 되려면 인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봇이나 AI를 현 단계에서 더 진화시켜야 한다.
한때 일부 정보·기술(IT) 대기업이 문어발 확장에 나서며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컸었다. 엄청난 기술력을 동원해 만들어낸 플랫폼처럼 포장을 하고선 택시와 대리운전, 부동산, 배달, 외식에까지 손을 뻗치면서 자영업자는 물론 중소·벤처기업들의 경제 생태계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해외 IT 공룡들은 우주로 골목상권을 넓히는데, 이 좁디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자신들보다 약한 이들과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네이버가 공개한 제2사옥 ‘1784’를 보고 내심 반가웠다. IT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코 밥그릇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네이버가 14일 공개한 1784는 테크 컨버전스 빌딩을 콘셉트로 건축된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이자 네이버의 미래가 담긴 기술 거점이라고 한다. 이름은 정자동 178-4번지 주소에서 착안한 초기 프로젝트명을 그대로 붙인 것이지만, 1784년을 기점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이 인류의 삶을 바꿔 놓았던 것처럼 1784를 거대한 테스트 베드 삼아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며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역사적 의미도 더했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정착되고 있는 와중에 대규모 업무 공간이 웬 말이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공룡들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보면 납득이 간다.
구글과 메타, 애플, 아마존 같은 미국 IT 대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거대 사무실 공간을 매입하는 데 거액의 현금을 쏟아부었다. 이들은 기존 본사 건물 주변과 동부 뉴욕, 서부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알짜 부동산들을 대거 사들였다. 투자 목적도 있고 복잡한 임대차 관계를 피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대도시일수록 숙련된 인력 풀이 많고, 젊은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지방 변두리보다는 도심 지역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의외의 현상이다. 팬데믹으로 비대면과 자동화 시대가 크게 앞당겨졌고,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을 감당하기 위해 IT 기업들은 다양한 인재 확보와 연구 공간이 필요해졌다. 빅 테크들의 부동산 투자는 더 진보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과감한 투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협업’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만드는 데는 공동의 협력이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네이버1784 역시 건축물과 로봇,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미래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네이버는 자사는 물론이고 스타트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험을 일상이 되게 한단다. 한 네이버 직원은 “창사 이래 이렇게 많은 기술 조직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난다”고도 했다. “진보된 테크놀로지는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네이버 직원의 말처럼, 이들이 만들어갈 네이버1784의 꿈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