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인에 편견, 정작 한국인은 떠나네... '선산' 정형석 감독 "피부색, 국적 구분 무의미"

입력 2022-04-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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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얼굴도 다르고 한국말 아직도 못하지만 저희 할머니, 아버지도 한국 사람이었어요, 고려인. 그래서 저, 한국 사람 피 요만큼 있어요.”
▲정형석 감독, 올레나 시들축 배우. 배우가 만든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팔찌를 나눠 낀 모습. (박꽃 기자 pgot@)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나타샤(올레나 시들축)는 자신과 후손이 죽고 난 뒤에 묻힐 수 있는 ‘선산’을 마련해볼 요량으로 땅을 사러 간다. 하지만 보수적인 땅 주인 할머니(허진)는 어눌한 말투의 백인 나타샤에게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땅을 파는 게 영 꺼림칙하다. 법적으로는 한국인일지 몰라도 한국인의 문화나 정서는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서다. 공교롭게도 땅주인 할머니는 곧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데, 자신이 한국에서의 나타샤처럼 이방인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입장이라는 건 아직 생각하지 못하는 듯싶다.

귀화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을 이야기하는 영화 ‘선산’은 정형석 감독이 연출했다. ‘성혜의 나라’(2018)로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그는 39분가량의 단편영화 ‘선산’으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다시 한 번 초청됐다.

▲'선산'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29일 전주 완산구 고사동 영화의거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이제는 모든 게 ‘글로벌’이다. 해외에서도 K무비, K팝 같은 문화콘텐츠를 받아들이지 않나.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다문화’라는 이야기만 많이 나왔지 그게 진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피부색, 국적 구분이 이제는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기준으로 구분되는 현실이 있다”고 ‘선산’ 연출 배경을 짚었다.

그는 “나타샤가 한국 사회에 섞이기 위해 노력하듯, 땅 주인 할머니도 미국에 가면 그렇게 해야 한다. 서로 다른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나타샤 역에 캐스팅된 건 우크라이나 출신 배우 올레나 시들축(Olena Sydorchuk)이다. 정 감독은 실제 우즈베키스탄 배우를 찾기 힘들어 캐스팅을 고민하던 중 올레나 시들축 배우의 “선하고 해맑은 느낌”에 출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선산'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생활 7년 차에 접어든 올레나 시들축은 국내 예능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영화 출연은 ‘선산’이 처음이다. 정 감독의 출연 제안을 받고 대본을 읽었을 때 “외국인이 경험하는 힘듦과 아픔이 느껴져서” 출연을 결정했다.

“실제 생활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제가 어딜 가든 사람들이 조심스러워하거든요. 한국어를 좋아해서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도 한국 사람들이 먼저 영어로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는 영화가 다루는 선산이나 제사 문화가 “우크라이나에서도 비슷하게 있었던 것”이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돌아가신 분을 위해) 가족끼리 만나서 음식을 준비하고 기도도 한다. 이런 건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이기 때문에 점점 없어져 간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도 전했다.

올레나 시들축은 ‘그 나라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끝에 고국 우크라이나의 아픈 상황도 언급했다.

“우크라이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인데 전쟁이 나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러시아는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없애버리기 시작했어요. 집뿐만 아니라 미술관도 폭탄으로 부숴놓았어요. TV를 틀면 우크라이나 역사는 아예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올레나 시들축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 모인 영화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촉구하는 공식 성명을 낸 걸 두고는 “중요한 일을 해준 한국에 고맙다”고 했다. 자신에게 공식 발언 기회를 준 걸 두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정형석 감독이 연출하고 올레나 시들축 배우가 출연한 ‘선산’은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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