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연방대법원의 과반수 대법관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전면 무효로 하는 데 찬성했다는 내부 논의 내용이 유출됐습니다. 약 50년 만에 낙태권이 박탈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 여론은 들끓고 있습니다. 낙태에 찬성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시민 수백 명이 연방대법원 앞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요.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1971년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이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여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썼는데요.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의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 사건에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1973년 1월 7대2로 낙태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은 임신 6개월 후에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그 전까지는 여성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스스로 임신 상태를 중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판결 이후 성폭행을 당했다는 매코비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반세기 동안 여성 낙태권을 보장하는 판결로써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사회에서 낙태 문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 판결을 재확인해왔죠.
2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사무엘 엘리토 대법관이 2월 작성해 대법관들이 회람한 의견서 초안을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초안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 “시작부터 완전히 잘못됐다. 논리가 빈약하고 판결은 해로운 결과를 초래했다”며 “우리는 이 판결을 기각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의견서에는 4명의 대법관이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찬성 의견을 밝힌 만큼 최종 판결에서도 낙태권이 폐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르면 다음 달 최종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판결이 확정되면 이후에는 각 주 차원에서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절반에서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3일 성명을 내고 “여성의 선택권은 기본적 권리”라며 “약 50년간 국법으로 역할 하며 기본적인 평등과 법적 안정성을 제공해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선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삼권 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성명을 발표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됐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요. 이후 국회의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로선 낙태에 관한 규정도, 처벌도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낙태가 불법화되면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우선 원정 시술과 불법시술이 성행할 수 있습니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낙태가 합법인 주로 가서 시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원정 시술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경우 무허가 시술 등 불법시술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임신중절을 위한 의약품 밀거래가 성행할 것이란 전망도 있는데요. 인터넷이나 암시장 등을 통해 의사 처방이 없는 약을 사고파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경우 여성들의 건강권이 침해될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전 세계의 시선이 몰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반세기 동안 유지된 낙태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