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인찬의 첫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그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삶을 말하는 책이다. 시와 삶이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가 될 수 있다면, 당연히 시는 삶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읽은 것은 누군가의 시이면서 누군가의 삶이다. 시라는 예술을 경유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 시가 우리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작동하는지 고민하는 일. 이 두 가지의 일이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에 담긴 이야기다.
황인찬은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시집에 수록된 ‘무화과 숲’이라는 작품 속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라는 문장은 사랑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평을 받으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는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 시집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산문집은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연재했던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의 원고 일부를 정리해 묶은 것이다. 이투데이는 12일 황인찬의 첫 산문집 출간 기념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그의 일문일답.
△ 시인으로서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것에 관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어땠나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인들을 소개하는 일이어서 즐거웠다. 다만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를 쉽게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내 일상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 일상이 독자의 일상으로 번져가고, 시에서는 우리들의 일상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말하면 시를 이해하기 훨씬 쉬워지니까.”
△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나오는 ‘저만치’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느슨한 연대’, ‘건강한 거리 두기’와도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
“책에서도 썼지만 나를 지키고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예술의 기본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리 두기에 실패하면 예술의 의미나 아름다움을 생성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적절한 거리 두기는 언제나 중요한 것이고, 비단 예술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 “마음, 사물, 사건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생각하는 일은 어느 한쪽만 보는 일보다 훨씬 시적인 일일 것”이라고 했다
“시 쓰기는 판단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이다.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부분들과 함께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것들도 묘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게 예술에서의 바람직한 재현이다.”
△ ‘신발’과 ‘사랑’의 관계에 관한 글도 흥미로웠다. 이 글을 읽고 뜬금없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떠올랐다. 이 글에서 당신은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
“세 번째 시집 제목에 사랑을 붙이는 바람에 책이 나왔을 때 사랑을 잘 모르면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웃음) 단순하게 말하면 나에게 사랑은 귀찮고 껄끄러운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훨씬 편하고, 가볍고, 가뿐하다. 그런데 사랑은 그런 귀찮음과 껄끄러움을 감수하게 한다.”
△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지만, 나는 둘이 된다”는 문장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순간조차도 외롭거나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사랑할 때 귀찮음과 껄끄러움을 감수하는 나를 자각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너와 내가 닿을 수 있는 부분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야 라고 분명하게 나눠야 관계가 좀 더 건강하고 오래갈 수 있는 것 같다.”
△ “일부러 틀리고, 적극적으로 삐뚤어지는 자세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최근에 실천한 경험이 있는지
“최근에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식집사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어느 날 지인이 몬스테라(monstera)를 물꽂이 하라고 줬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화분에 손가락을 찔러본다. 물이 말랐는지 안 말랐는지 확인하고, 물을 줄지 말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삐뚤어지는 자세와 상관이 있는진 모르겠다. 나로서는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인데, 그럴 때 새로운 감각이 돋아나니까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 윤동주의 시 ‘병원’에 대해 “젊은 날에만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그게 뭐라고 생각하나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들이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픔을 기술적으로 잘 견디고 처리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한데, 젊은 시절에는 그런 걸 잘 모르니까. 몸과 마음이 자라는 시기이고, 아픔에 더 민감하고 약할 수밖에 없다. 아직 세상이 익숙하지 않아서 세상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감각하는 시기가 20대 초반의 시절인 것 같다.”
△ 젊은 시절 당신의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이었나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가 제일 큰 화두이자 문제였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괜찮은 사람만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아상을 계속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지?’로 이어졌다. 내가 문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도 이런 생각과 연결된다. 문학을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게 나의 부족함을 어떤 식으로든 상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6월 1일 서울국제도서전에 맞춰 그림책이 발간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