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병·산소결핍증 등 위험 노출
업계 "여름철 대비 메뉴얼 준비"
전문가 "발주처 공사기간 연장 등
안전사고 예방 다양한 접근 필요"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근로자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 원 이상 벌금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건설사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우려한다. 법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해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의 경우 석 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경찰은 지난달 27일에서야 현장 책임자 3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3일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다만 아직 경영책임자인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의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만큼 수사 결과에 따라 중대재해법에 대응하려던 건설업계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 예방은 근로자와 경영진 모두 노력해야 하지만, 법에는 경영진에 대한 징벌적 처벌만 강조해놨다”며 “중대재해법은 사고 발생 시 건설사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철을 앞두고 건설현장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법 시행령 안에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병으로 열사병과 산소결핍증을 포함했다. 건설현장은 찜통더위 속 옥외작업이 많은 데다, 밀폐공간에서 이뤄지는 작업으로 인해 산소결핍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년~2020년) 여름철(6월~8월)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등 온열질환 재해자는 156명에 이른다. 발생장소를 보면 건설업이 48.7%(76명)로 가장 많았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혹서기를 대비해 대응 메뉴얼을 새로 준비하고 있다”며 “건설현장 근로자들이 더위에 단련됐다고 하지만 이들 역시 50~60대 고연령층이라 온열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보완할 안전관리자를 구하려고 해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중소 건설사 입장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관리체계를 따라가기 벅찬 것이 현실이다. 대형 건설사와 달리 인력 충원과 시스템 개발에 예산을 투입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안전관리 담당자 78%가 중대재해법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이 과도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대부분은 법 시행 후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고라도 나게 된다면 속절없이 폐업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면 처벌을 우선시할 게 아니라 역할과 책임부터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순히 처벌만을 강화하기보다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접근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훈희 고려대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사고가 나면 사용자를 처벌해 재해를 막겠다는 것인데, 이건 공부 못하는 내 자식을 때리겠다는 것”이라며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 비용을 지출할 준비가 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발주처에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비용을 더 지급하고, 공사 기간을 늘려줄 용의가 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