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감독의 영화 역사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결코 아니다. 유영진 감독의 ‘깜동’(1988) 등의 작품에서 연출부로 활동한 그는 1992년 첫 작품인 누아르 ‘달은… 해가 꾸는 꿈’을 연출했지만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두 번째 작품인 코미디 ‘3인조’(1997)의 성적은 더 참담했다. 이후 선보인 ‘복수는 나의 것’(2002)에는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배우들이 총출동했지만 가학적인 작품 수위 때문에 많은 관객에게 선택받지는 못했다.
역경을 딛고 연출한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친절한 금자씨’(2005)가 국내 흥행한 뒤, 박 감독은 ‘박쥐’로 다시 한번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폭력, 근친상간 등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거침없이 다뤘고, 2016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아가씨’로 4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기록까지 썼다. 업계에서는 ‘잘 배운 변태’라는 매력적인 평가가 나왔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박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헤어질 결심’은 한 남자의 사망 사건을 둘러싸고 마주하는 형사(박해일)와 사망한 남자의 아내(탕웨이) 사이의 묘한 기류를 다룬다. 그동안 선보인 작품과는 달리 잔혹한 묘사나 성적인 장면은 배제한 채 범죄물 기반의 로맨스 영화로 완성했다. 박 감독은 프랑스 칸 현지에서 진행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큰 자극적인 요소 없이 관객이 능동적으로 음미하는 형태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칸영화제 기간 내내 ‘극장과 영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도 표현했다. 감독상 수상 직후 열린 외신과의 기자회견에서 박 감독은 “(코로나19 이후 맞닥뜨린 현실이) 영화관의 위험이지 영화의 위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에는 영화관이 곧 영화다. 영화관에서 집중력을 가지고 여러 사람과 함께 본다는 체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보도록 만든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패에 굴하지 않고 꾸준한 영화 연출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진정한 영화애호가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