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양성 위해 정부 비롯 산·학·연 모두 협업해야
“의사과학자는 사회를 고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의사이자 과학자입니다. 코로나19라는 문명사적 사건이 발생한 지금은 '생명의 시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을 선도할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올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설치된 ‘의사과학자양성협의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대희<사진> 서울대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투데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강 교수는 “의사과학자는 메디컬 사이언티스트(medical scientist)로 의학에 기반해 물리·화학·사회과학·인문학 등의 다양한 학문과 함께 연구하는 의사연구자”라며 “우리나라도 이제 의사과학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 조사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학문으로서 의학 영역이 확대되고 새로운 감염병 등장, 고령화 등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 역할 외에 의학과 과학을 접목한 연구 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의사과학자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의사과학자는 기초의학 성과를 창출하고 이를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핵심인재로 꼽힌다. 코로나19 대유행 후 치료제와 백신 개발 등 의사과학자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도 의사과학자를 미래 바이오산업을 이끌 핵심인재로 보고 적극 육성에 나선다.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중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에 의사과학자 등 융복합인재 양성을 추진 정책으로 포함시켰다.
강 교수는 “최근 학문 영역이 넓어지면서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의 경계가 없어졌다”면서 의사과학자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과거 의사과학자 역할은 질병의 원인을 찾고 새로운 지식 창출과 학문 발전이었다. 지금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학과 기술발전 연구가 더해졌다. 강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백신과 치료제, 진단키트 개발 등 의사과학자의 역할은 사회가 요구하고 임상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 연구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의사과학자의 중요성이 높아졌지만 우리나라의 의사과학자 인재 양성은 더디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부터 의사과학자 양성으로 글로벌 바이오연구를 주도하고 있고, 노벨상 수상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국내는 매년 약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지만, 연구를 하는 의사과학자는 10명이 채 안된다. 실제 지난해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의과대학에서 배출되는 연구의사(의사과학자)는 의과대학 1곳 당 1명이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교수도 “올해 초에 서울의대를 포함해 주요 의과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의사과학자를 하겠다는 학생은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의사과학자로 연구 분야를 선택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의과대학이 부속병원을 운영하는 시스템이지만, 지금은 병원이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상황이다. 또한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해도 교원으로 갈 자리가 없거나, 임상의사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과 근무환경 등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전문의를 마치고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에서 의사과학자로 교육을 받았지만, 다시 임상의사로 병원에 돌아와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가 있다. 강 교수는 “연구를 하는 의사과학자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졸업 후 갈 곳은 없다. 의사과학자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의사과학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강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2020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로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성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미국의 제니퍼 A. 다우드나 박사를 꼽았다. 그는 “한 두 사람의 창조적인 연구가 세상을 바꾸고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성과를 만드는 인재를 인위적으로라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강 교수는 정부와 산업계, 대학 등의 협력 및 협업을 제시했다. 의사가 아닌 과학자들도 다시 의학 영역에서 공부하고 넒은 의미에서 의과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학문 영역도 보다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강 교수는 “의사과학자 양성의 '시급성'과 '완전성' 2가지를 고려해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도 2006년 교육부, 2019년 보건복지부가 융복합 의사과학자 양성 예산을 지원해 왔지만 단기적이고 임기응변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강 교수는 효과적인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정책수립 △조직 구성 △예산 확보 △산·학·연·관 협력의 단계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현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됐고 이미 의사과학자양성협의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제 예산을 확보하고 기업과 대학이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참여 주체별 협력에 대해 강 교수는 과학기술 특성화대학과 의과대학간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예들 들어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에서 의사과학자 공부를 마친 의사가 의과대학이나 병원에 돌아와서도 같은 연구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 방안으로 의사과학자양성협의회는 ‘특성화대학과 의과대학간 공동지도’, ‘학점 공유’, ‘공동 학위수여’ 등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신약개발’, ‘의료기기’, ‘디지털 치료제’ 등 영역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과대학 진학과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강 교수는 어떤 학문인지, 무엇을 하는 분야인지 꼼꼼하고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의과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음에도 진학 후 무슨 과를 선택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슨 학문인지, 어떤 학문을 배우는지 잘 알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사는 질병을 고치고 사람을 치료하는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과학자에 대한 사명감도 강조했다. 강 교수는 “의사과학자는 더 큰 틀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사, 즉 사회를 고치는 의사다. 의사과학자로 생명과학 연구·발전에 기여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과학기술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명감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