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보의 아버지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명예교수
백도어 문제도 일으킬 수 있어
소재ㆍ부품ㆍ장비 국산화 서둘러야
8일 대전에 있는 레인보우로보틱스 회의실에서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는 이투데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오 교수는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이자 한국 최초의 이족 보행 인간형 로봇인 ‘휴보’를 탄생시킨 ‘휴보 아버지’다. 그는 2011년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설립한 뒤 현재는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다.
오 교수는 “중국산 로봇들이 국내에 계속해서 들어오게 되면 국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싼값으로 들여온 중국 로봇이 국내 시장을 독점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중국산 로봇의 독점이) 백도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로봇의 자국화가 중요하다”며 “특히 반도체처럼 로봇 또한 국가전략산업으로 보고 로봇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같은 핵심부품을 국산화시키는 움직임이 더욱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산 로봇은 대부분 기술 수준이 크게 높지 않은 소형 로봇, 무인배달 로봇, 식당 서빙 로봇 등이다. 국내는 주로 중소기업들이 관련 로봇 사업을 하고 있다. 대기업보다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아 당장 팔릴 수 있는 ‘캐시카우’ 로봇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와 국내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오 교수는 중국 업체들의 난립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 백도어를 통해 국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은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홈 서비스 로봇, 생활 도우미 로봇 등 미래 지향적인 지능형 서비스 로봇에 초점을 맞추고 투자와 연구·개발(R&D)을 지속하고 있다.
오 교수는 “산업용 로봇은 이미 유럽과 일본의 지배력이 상당히 높은 데다 더는 시장 가치가 창출되기 어렵다”며 “하지만 지능형 서비스 로봇은 B2B가 아닌 B2C로 향후 스마트폰만큼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대기업들이 이곳에 초점을 두고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가 세계 주요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결국 ‘우리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중 경쟁 관계 속에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비롯한 전 세계적 기술 동맹이 강화되고 있는데 로봇도 여기에 함께 묻어갈 필요가 있다”며 “미래 시장인 로봇 산업에서 우리가 해외 주요 국가와 협업·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우리의 기술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로봇의 핵심부품부터 자국화해 중국산으로부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우리만의 기술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원천 기술’ 확보는 물론 본격적인 로봇의 시장 창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가 짧은 로봇 산업에서 기술 축적에 대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여유를 갖고 기초 원천 기술 확보에 가치를 둬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빙 로봇, 안내 로봇, 지능형 로봇 자체가 만들어지고 공급되고 있긴 하지만 시장 자체가 형성됐다기보다 아직 모색하는 수준”이라며 “기업들이 무엇이든 만들 준비는 됐으나 어떤 것이 히트를 칠지 짐작 정도만 할 뿐 여전히 시장과 고객의 접근성이 떨어져 시장 창출이 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시장 모색 및 확보를 위해 두 가지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오 교수는 “인력 확보 문제는 모든 산업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차치하고 원천 기술 확보와 시장 창출이 가장 중요하다”며 “기업들은 팔리는 캐시카우를 만드는 게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기술 수준을 높여 로봇에 대한 니즈가 생겼을 때 곧바로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이다”라고 밝혔다.
‘시장 창출’이 곧 수익과 기업의 영속성과 연결되는 만큼 이에 대한 고민도 깊다. 오 교수는 “기업 스스로 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지만, 현재는 3D 업종이나 단순 노동, 공장 자동화 확장 등에서 로봇에 대한 니즈가 강하다”며 “산업을 포함해 의료 분야에서는 로봇 시장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일반 소비자 대상의 로봇 시장은 아직 커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정부 지원 사업에 있어 좀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로봇 기술이 나오기 위해서는 금전적 지원만큼 기업의 자율성 보장과 정성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 지원 사업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과정도 복잡하고 간섭도 심할뿐더러 여러 가지 절차와 공정성 등을 평가 잣대로 세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하는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필요한 것은 내 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평가가 공정하다는 소리는 듣겠지만 이미 알려지고 너도나도 하는 결과물만 낳게 된다”며 “정부에서 평가하는 기준을 벗어나면 실패로 여겨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보수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정부 지원 사업의 경우 창의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잘 운용되는지를 보기보다 ‘스펙’과 ‘평가 항목’에 치중한다고 꼬집었다. 과정 속의 정성적 평가를 보지 않는 데다 기본적인 신뢰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정부가 로봇 산업을 지원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실제 사업을 해보니 서류작업에도 2~3명이 필요하고 시간도 상당히 소요될 뿐 아니라 정량적인 요건과 숫자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획일적인 평가 기준하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 없다고 우려하면서 지원 사업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류와 절차상 (로봇에 대한) 보증과 규격만 요구하다 보니 겉으로 그럴듯한 스펙만 남고 작동하지 않거나 창의성도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절차 간소화와 함께 신뢰자의 주관적 평가를 믿고 정량적 평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1차, 2차, 3차 등 심사 과정을 거칠 때 심사하는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이 다르고 이해관계를 분리하기 위해 비전문가들이 들어오기도 해 로봇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며 “결국 사업 공모에 있어서 정성적 평가를 포함하는 선진국형으로의 획기적 전환과 함께 참여 기업에 대한 신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객관적 지표를 중시하고 ‘5년 뒤 시장 점유율’ 등을 요건으로 내세우는 공모에서는 혁신적인 기술이 창출되기 어렵다고 오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가장 필요한 지원은 기업의 창의성과 자율권 보장, 정성적 평가”라며 “객관적 수치가 아닌 연구할 만하다고 여겨지면 지원해주고 이를 통해 기업의 개척 정신을 길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사업 절차의 복잡성과 경직성 등도 문제로 지적하면서 정부의 전향적인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인증 문제를 비롯해 협동 로봇, 자율 주행, 드론 등과 새로운 사업과 관련한 법안이 생기면 이는 사실상 규제법에 가까웠다”며 “이 때문에 (사업하는 기업이) 구속되는 경향이 있어 정부의 네거티브 룰 적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