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열어둬
긴축 얼마나 지속할지는 미지수...회원국 저마다 다른 사정
부채 비중 높은 남유럽, 금리 상승 부담 커져
유럽중앙은행(ECB)이 9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현행 0%로 동결하면서 내달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그간 초저금리를 유지했던 ECB가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은 11년 만의 처음이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이달 기준금리를 현행 0%로 동결하고,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0.50%와 0.25%로 유지하기로 했다.
시장이 주목한 대목은 ECB의 금리 인상 예고였다. ECB는 7월 0.25%포인트를 인상하고 9월에도 재차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중기 물가상승률 전망이 유지되거나 악화하면 더 큰 폭의 인상도 적절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 폭이 0.5%포인트 이상인 '빅스텝' 가능성도 열어뒀다. ECB가 3개월 안에 두 번이나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간 ECB는 내달 1일로 예정된 자산 매입 프로그램(APP) 종료 전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는데, 이번에 7월에 APP 종료와 함께 금리 인상하겠다는 선언은 당초보다 긴축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CB가 이처럼 공격적 긴축모드로 전환한 배경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 상승률이 8%대에 달하는 등 높은 인플레이션이 있다. 유럽 물가 상승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식량 에너지 가격을 넘어 전 제품군과 서비스로 확산하고 있다. ECB는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3월 5.1%에서 6.8%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영란은행 등 이미 긴축에 나선 주요국들과의 통화정책 격차 역시 ECB가 긴축에 서두르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ECB의 긴축 기조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연준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달리 ECB는 저마다 각기 다른 유로존 19개 국가의 상황을 고려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자칫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매도세가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곧 부채가 많은 남유럽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이미 유로존의 스트레스 지표인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금리 스프레드는 계속 완만하게 확대되면서 이날 2.007%포인트로 2020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스프레드 확대는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국채보다 독일 국채 보유를 선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MUFG의 통화분석가인 리 하드먼은 "남유럽의 차입 비용이 계속 상승하면 해당 국가들의 (경제) 성장 전망이 악화할 수 있다"면서 "이는 ECB가 잠재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긴축) 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여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이번 통화정책회의 직전까지 올해 금리 인상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언급했던 것도 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4월 유럽의 느린 임금 상승을 포함해 유로존과 미국 경제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우리 경제와 (미국 등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ECB는 이날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2.8%, 2023년 2.1%로 하향 조정했다.
결국, ECB가 긴축 정책을 통한 물가 안정 노력과 국채 시장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번 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로 1.5%포인트 하향 조정하면서 중앙은행들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성장을 더 둔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