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8시 44분경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발사 직전 기술적 결함으로 조립동에 되돌아간 지 닷새만이다. 이날 11시 10분 누리호는 하늘을 향해 바로 섰고 강풍에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됐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지만 이대로라면 21일 오후 4시 누리호의 우주행에 박차가 가해질 전망이다. 여전히 변수는 있다. 바로 '날씨'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지난주 누리호는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쳤다. 15일 발사를 목전에 두고 생긴 문제가 발사를 무기한 연기시켰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14일이었다. 당시 나로우주센터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47m에 달하는 ‘장신’의 누리호에게 치명적인 환경이었다. 쉽게 말해 누리호의 높이는 아파트 15층 높이다. 아파트 한 채만 한 누리호 위에서 강풍을 뚫고 고공 작업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누리호의 발사 예정일을 옮겼다. 이날 이들은 “오전 6시 비행시험위원회, 이어 발사관리위원회를 개최했다. 회의결과, 나로우주센터에 강한 바람이 불고 있고 더 세질 가능성이 있어 애초 계획보다 하루씩 연기해 15일 이송, 16일 발사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레벨 센서는 산화제 탱크에 산화제(발사체가 추진력을 얻는 데 필요한 물질)가 얼마나 충전됐는지 그 수위를 측정하는 장치다. 즉 레벨 센서가 산화제 탱크에 충전된 정확한 산화제 주입량을 알려주지 못하면, 누리호는 추진력을 얻어 힘차게 하늘로 솟는 게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현장에서 신속히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사체로 향했다.
문제는 누리호가 발사대에 기립 된 상태에서는 연구진들이 발사체에 진입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었다. 결국, 오후 5시 항우연 연구진은 발사대에서는 현장 조치가 어렵다는 판단을 발사관리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렇게 발사대에 기립해 있던 누리호는 다시 눕혀진 뒤 이송 차량에 실려 조립동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누리호의 16일 발사는 불가능해졌다. 심지어 문제의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상태라 누리호의 두 번째 발사 시도는 무기한 미뤄졌다. 날씨나 기술적 변수를 고려해 예비 발사일을 23일까지로 결정했지만, 더 미뤄진다면 이후엔 발사관리위원회를 열고 발사일을 다시 정해야 했다. 그야말로 발사 일정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이들은 발사체 1단에 있는 점검창에 들어가 누리호 내부를 조사했다. 발사체는 크게 산화제 탱크와 연료 탱크로 나뉜다. 연구진은 이 사이에 마련된 공간인 점검창에 직접 들어가 설비를 점검한 것이다.
만일 점검 결과 단순 부품 오류면 문제는 빠르게 해결될 수 있었다. 체구가 작은 작업자가 1·2단을 분리하지 않고, 그 연결부로 들어가 부품을 교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벨 센서 자체의 문제라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발사체의 1단과 2단을 완전히 분리해야 했다. 이 경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려 예비 발사일까지 발사를 재개하는 건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1·2단 분리를 고려한 최악의 경우와 달리 원인은 일부 부품의 단순 오류로 드러났다. 연구진들은 1.2m 크기의 부품 코어만 바꿔도 문제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17일 부품 교체를 완료했다. 또 1~3단 전체 점검까지 마치고 레벨 센서가 정상 작동하는 것도 확인했다. 우여곡절 끝에 20일 누리호는 다시 발사대에 섰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변수는 날씨다. 6월 말부터 7월까지는 장마철이다. 게다가 정체전선(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제주에서부터 장맛비가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날씨가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누리호 발사에는 비보다 비에 동반되는 바람과 낙뢰가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기상 악화 등으로 21일 발사가 불발되더라도 발사 예비일까지 이틀간의 여유가 있다. 과연 이번에는 누리호가 ‘세계 7번째라는 우주 강국’이란 꿈을 싣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누리호의 재도전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