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긴축 여파에 경기 선행 지표로 꼽히는 구리 가격마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금리 불확실성 해소에도 구릿값의 회복세가 약화하자 대내외 경기 침체가 본격화됐다는 시각이다. 이에 전기차 및 신재생에너지 수요로 주목받던 국내 전선 관련 주가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0일(현지시각)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국제 구리 선물 3개월물 가격은 톤당 8875.0달러로 마감했다. 지난해 8월(8775.5달러)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9000달러 아래로 내려앉았다.
특히 구리 가격은 △9일(-0.64%) △10일(-0.97%) △13일(-2.59%) △14일(-0.29%) △15일(-0.06%) △16일(-1.64%) △17일(-0.04%) △20일(-2.48%) 8거래일 연속 9% 가까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3월(1만730달러)부터 3개월 동안 약 18%가 떨어진 셈이다.
자동차, 반도체, 전기·전자 등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쓰이는 구리는 원유 다음으로 글로벌 경기 흐름을 잘 보여준다. 통상 실물경제가 좋으면 구리 가격은 상승하고, 경기가 부진하면 구리 가격이 내려간다. 이에 경제 전문가보다 경기 흐름을 잘 읽는다는 뜻에서 ‘닥터 코퍼(Doctor Copper, 구리 박사)’로도 불린다.
국제 구리값 하락에 국내 전선 관련 주가도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22일 기준) 대한전선(-22%), 대원전선(-26%), 대원전선우(-14%), LS(-8%), 가온전선(-16%), KBI메탈(-25%), LS(-8%), LS전선아시아(-16%) 등 전선주 주가는 일제히 급락하고 있다. 현대일렉트릭은 전일 대비 3.98%(850원) 올랐으나 이달 하락분(-4.7%)을 상당 부분 되돌리는 수준에 그쳤다.
통상적으로 전선업체들은 구릿값 변동에 맞춰 판매가격을 조정하는 ‘에스컬레이터(escalator) 조항’에 따라 거래한다. 이에 원재료 값이 내려가면 판매 가격도 하락해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리는 생산 원재료 대비 무려 65%를 차지한다.
김윤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긴축 분위기, 달러 강세, 경기 선행지수 및 기대 인플레가 떨어지며 하락 압력이 높다. 경제에 민감한 구리 가격은 특히 부진한 상황”이라며 “일단 하반기 전체적으로 구리를 포함해 다른 상품 가격을 둘러싼 매크로 경제 환경이 비우호적이라고 본다. 연말까지 구리 가격은 약보합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인 중국 측 수요가 회복되면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코로나 봉쇄로 구릿값이 많이 빠졌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보다 실질적 수급 우려 때문”이라며 “중국 봉쇄 완화와 재정정책이 확정되면 구리가 다시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어느 정도 저점이 형성됐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