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황 부진에 印 수출 제한에 설탕값 급등
복합위기에 경쟁력 낮은 기업 구조조정 불가피
#경기도 소재 A기업은 빵과 떡을 생산하는 업체로 작년 월매출이 8억~9억 원 수준이었으나 현재 6억~7억 원으로 줄었다. 이 기간 마진은 1억 원에서 7000만~8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단팥빵 한 개를 만드는 데에 과거 800원가량을 썼다면 지금은 1100원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을 올리기는 어렵다. 단 몇 백 원만 올라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매출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납품 중기들도 오른 원재료 값의 절반 정도만 인정받고, 후려치기식으로 물건을 납품하고 있다. 주변에선 팔수록 손해라는 생각에 아예 생산량을 줄인 곳도 나온다. 상황을 돌파할 뾰족수가 없다는 의미다. 업체 대표는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비롯해 설탕, 탈지분유, 팥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줄줄이 올라 원재료비만 작년대비 평균 40% 가량 오른 것 같다”며 “영세 업체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상공인들의 현실은 더 막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직물을 염색해 수출하는 B업체는 석탄 가격 급등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염색 과정에서 사용하는 스팀(증기)을 만들기 위해 석탄이 필수인데, 러시아의 전쟁으로 최근 가격이 3배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업체 대표는 “업계 전체가 고사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지금은 가스(LPG)를 이용해 가까스로 대응하고 있지만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면 더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들은 눈만 뜨면 오르는 원자재 가격에 휘청이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쟁 장기화와 이상기후, 보호무역주의와 자원 무기화 등을 내세운 원자재 전쟁이 심화하면서 존폐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발표한 ‘우리 경제 수입 공급망 취약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수입 품목 5381개 중 2144개(39.8%) 수입 공급망이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품목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들여오는 경로가 다양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에서 주요 자원 부국들이 자원을 무기 삼아 칼자루를 쥐고 흔들면 자금력, 대응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들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주요 자원을 생산·수출하는 일부 국가들은 이미 보호무역주의와 자원 무기화에 나섰다. 최근 설탕 값이 급등한 것도 보호무역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전세계 설탕 수출 1위 국가인 브라질이 이상기후로 작황이 악화돼 설탕 가격이 뛰는 가운데 설탕 2위 생산국인 인도가 지난달 말 설탕 수출을 1000만 톤으로 제한하면서 빗장을 걸어잠갔다.
특히 설탕 가격은 고유가 현상과도 관련이 깊다.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는 바이오에탄올의 원료로 사용된다. 실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일부 사탕수수 공장들은 사탕수수를 에탄올 제조로 전환하기도 한다. 유가가 진정되지 않으면 덩달아 설탕 공급이 줄고, 가격도 뛸 수밖에 없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4월 한 보고서에서 “최근 중국, 멕시코,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이 자국 내 자원 비축 및 활용을 위해 금수 조치를 강화했다”며 “우리나라는 전반적인 산업 수요에 필요한 주요 원자재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국, 중남미에 의존해 리스크에 취약한데 공급망 진영화가 심화하면 원자재 수급, 중간재 공급망 재편에 대한 정부와 기업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자재와 중간재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리스크 대응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은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들이 이를 제품가격에 반영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쟁력이 낮은 기업들은 제품 가격에 전가하지 못해 채산성이 악화되거나, 가격경쟁력 상실로 구조조정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