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지 밀과 철강 등 훔쳐 되팔아
병사들에겐 지역 내 약탈 허용하기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올해 서방국가로부터의 제재와 고립에 직면한 러시아가 새로운 경제 정책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경제를 개선하기 위해 신경제정책(NEP)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시장의 힘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에 기반을 뒀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가 쓰는 정책은 우크라이나에서 물건을 훔치고 군인에 의한 약탈을 조장하며 세계에 기근을 가져오는 등 무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최근 분석했다.
대표적인 예로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군은 흑해 항구를 통해 운송되는 2000만 톤 이상의 곡물을 차단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 행동을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유엔은 러시아의 행위가 자칫 세계 곳곳에 기근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흑해를 틀어막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전 세계 대량 기근 가능성을 이용해 서구권에 제재 해제를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포브스는 설명했다. 지난달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서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마르가리타 시모냔 편집장은 “모스크바 시민들로부터 ‘우리의 희망은 전부 기근에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며 “이는 기근이 시작하면 서방이 제재를 해제하고 우리와 가까워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풀기 위해 기근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밀과 철강을 훔쳐 되파는 짓도 저지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금까지 러시아가 훔친 곡물과 종자만 40만 톤이라고 주장했고, 러시아 언론들도 자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습득한 밀을 판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다만 모스크바타임스는 “훔쳤다”는 표현 대신 “점령지에서 곡물을 운송했다”는 표현으로 정당화했고, 타스통신은 “헤르손이 러시아에 수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모습은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농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토지를 국유화했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는 세계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생산적인 농경지를 빼앗아 공급을 방해하고 식량 가격을 상승시켰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약탈을 통해 군인들에게 보상하는 중세시대와 같은 전략도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는 전사자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비롯해 군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재정적 문제를 겪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에게 비공식적인 보상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동네 약탈을 허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가 키이우를 한창 공격하던 4월 초 데니스 모나스트리스키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수도 인근에서 러시아군들이 식량 공급과 구조 활동을 차단하고 아파트를 약탈해 수백 명의 민간인이 죽거나 아사할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3월엔 “우크라이나군이 주유소를 습격한 러시아 약탈자 7명을 체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포브스는 “러시아 정부가 현재의 접근법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도 있겠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경제와 미래를 얼마나 왜곡시켰는지 보여준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러시아가 기근과 약탈, 도둑질을 통해 성공적인 21세기 경제를 건설할 것 같진 않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