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로 오히려 수요 늘어날 수 있어…올해만 8조 원 이상 세수 감소
정부가 1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37%로 확대하면서 휘발유·경유 가격이 소폭 하락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유류세 인하 폭을 50%로 확대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다만, 인하 폭이 더 커질 경우 오히려 수요가 유지돼 인하 효과가 미미하고, 결국 세수만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오후 2시 기준 전국 평균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2.10원 내린 리터(L)당 2123.23원,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0.96원 내린 리터당 2153.50원이다.
유류세 확대 시행 전날인 지난달 30일의 평균 가격은 휘발유 2144.90원, 경유 2167.66원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휘발유는 21.67원, 경유는 14.16원 하락했다. 비율로 보면 휘발유는 1.01%, 경유는 0.65% 내린 셈이다. 이는 당초 정부가 예측했던 인하 효과인 휘발유 기준 리터당 57원, 경유 기준 리터당 38원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지속해서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체감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유류세율 조정 범위를 50%까지 확대하자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 배준영 등 국민의힘 의원 13명은 현행 30%인 유류세 탄력세율 범위를 5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이를 적용하면 휘발유 유류세는 현재 리터(L) 당 516원에서 368원으로 148원 더 내려갈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선 유류세 인하 폭을 50%까지 늘리더라도 실제 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류세 인하로 인해 소비자들이 수요를 줄이지 않으면 가격이 오히려 올라 정유사들에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소비자단체 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유류세 인하 정책에도 주유소가 국제유가 인상보다도 가격을 더 많이 인상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놨다. 유류세 인하 폭만큼 정유사나 주유소가 기름값을 낮추도록 하는 강제 조항이 없어서다.
6월 18일 기준 환율을 고려한 국제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를 인하하기 전인 작년 11월 11일과 비교하면 L당 420원 올랐고, 유류세는 L당 247원 내렸는데 휘발유 가격은 그 차액인 173원보다 더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이 기간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평균 294.52원 올랐고, 주유소 1만792곳 중 99.24%가 173원보다 휘발유 가격을 많이 인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류세 인하로 인해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공급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세금을 인하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에게 차를 더 많이 운전하라는 신호를 보내 기름값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의 석유정보 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폭이 20%에서 30%로 확대된 지난 5월 국내 휘발유·경유 합계 소비량은 2482만2000배럴로 4월보다 43.0% 증가했다.
세수 감소로 인해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유류세가 20% 인하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는 2조5000억 원이 줄었고, 30%가 인하된 5~6월엔 1조3000억 원, 인하 폭이 37%까지 올라가는 7~12월엔 5조 원(이상 지방세 포함)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유류세 인하로 올해만 8조 원가량의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해 유류세를 20% 인하했을 때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50% 정도까지 확대했을 때 그에 비례해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유류세가 인하되더라도 남아있는 석유류 가격 상승 요인으로 인해 상쇄돼 효과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천 연구위원은 "결국 가격은 수요·공급 요인으로 결정되는 건데 (유가 인하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유지해도 그만큼 살 사람이 많고 이윤이 더 많이 보장된다고 하면 떨어뜨리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일단은 유가가 워낙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추가 인하가 효과는 있겠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본다면 불확실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