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국내 증시의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외 주요 증권사 10곳 중 6곳은 지난 1년간 ‘매도’ 보고서를 한 건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과거 1년간 종목 보고서를 발간한 국내외 증권사 46개사 중 ‘매도’ 의견을 제시한 보고서가 1건도 없는 곳은 28곳(60.9%)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29곳)과 비슷한 수치다.
적극적인 매도 의견을 낸 곳은 외국계 증권사가 대다수였다. 매도 비율이 가장 높은 증권사는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로, 전체 보고서 중 22.8%가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였다. 이밖에 △씨엘에스에이코리아증권(21.3%) △모간스탠리인터내셔날(16.3%) △골드만삭스(15.4%·7월 1일 기준) △도이치증권(14.3%) △제이피모간(11.6%) 등 외국계 증권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국내 증권사의 매도 비율은 대부분 0%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증권사 중 매도 의견을 제시한 곳은 DB금융투자(0.8%), 미래에셋증권(0.7%), 상상인증권(0.5%), 다올투자증권(0.5%)이 전부다.
연초 이후 국내 증시가 하락을 거듭하면서 코스피는 2분기에만 -15.08% 하락했다. 그런데도 증권사 보고서의 매도 비율은 지난해 말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증권사 보고서가 실제 투자 환경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가 제시하는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사이의 괴리도 커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금요일(15일) 종가 기준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간 괴리율이 가장 큰 기업은 에코프로비엠으로, 괴리율은 199.31%에 달한다. 20여 개 기관이 추정한 에코프로비엠의 평균 목표주가는 33만3729원이지만, 실제 주가는 10만~11만 원대 수준에 그쳤다.
DB하이텍은 지난주 물적분할 소식에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주가가 4만 원대까지 폭락했지만, 증권사의 목표주가는 2배가 넘는 10만143원으로 132.35%의 괴리율을 보이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매도 보고서를 내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로 법인영업을 꼽는다. 증권사는 리서치 업무 외에도 기관투자자나 일반법인을 대상으로 금융상품을 중개하는 업무를 맡는데, 기관이 투자하고 있는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의 투자금융(IB) 사업에서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면 애널리스트들이 기업탐방을 못 하게 하거나 영업부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증권사와 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매도 의견을 내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외국계 증권사는 이런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매도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투자자들의 반발도 외면하기 어렵다. 지난해 7월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 공모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며 ‘매도’ 의견을 제시했지만, 하루 만에 리서치 플랫폼에서 해당 보고서를 내렸다. 업계에서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영향을 끼쳤을 거라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은 국내 증권사 보고서에서 중립(보유) 의견을 사실상의 매도 의견으로 여긴다. 증권사들도 최근 매수 일색이던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하거나, 목표주가를 낮추는 경우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