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 대비 종자 보급량 확대…기능성 농작물 농가 소득 향상 연결
"디지털 농업의 현장 정착을 위해서는 스마트팜 표준 확립과 기술·기자재의 현장 검증 문제를 해결애야 합니다. 디지털 농업은 농촌의 인구감소, 농업인구 고령화를 풀 수 있는 열쇠입니다."
안호근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원장은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농업이 가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서둘러야 하는 것이 디지털 농업의 정착이라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올해 3월 1일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취임한 지 이제 4개월 남짓 지났지만 그는 농진원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확고한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농정기획과 농촌 개발, 인력 육성, 식량·원예, 축산, 국제통상에 홍보까지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두루 책임졌다. 차관보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에서 재직하며 농업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폭넓은 농업 분야 경험을 갖춘 전문가로 인정받는 이유다.
특히 농진원이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기관 명칭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에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책임감도 무겁게 느끼고 있다.
그는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은 농촌진흥청과 국내 연구기관 및 단체, 농업인 연구 개발한 농산업 기술을 현장에 보급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출범했지만, 이제 농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술 보급에 더해 벤처창업, 디지털농업, 탄소중립, 치유농업 등 기관의 기능이 꾸준히 확장하면서 농산업 진흥기관으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 농업의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를 풀기 위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지털 농업이다. 다만 스마트팜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농업은 점차 확산 기로에 서 있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안 원장은 "아직 스마트팜 기자재에는 공인된 규격이 없다.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 나도 기업별 제품 호환과 AS가 불가능해 시설 전체를 개보수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며 "제품 출시 과정에서도 작물과 가축, 곤충 등 사용 분야가 다양해 같은 제품이라도 각기 다른 농업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신제품 테스트에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해 기업 간 기술격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농진원은 디지털 농업을 위한 표준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농진원은 지난해 12월 농진청으로부터 표준개발협력기관(COSD)으로 지정돼 디지털 농업의 표준화 권한을 위임받았다.
안 원장은 "표준개발 및 표준 제·개정 창구가 일원화돼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지난해 문을 연 김제·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실증단지도 올해 3월부터 본격 운영해 스마트팜 기술과 기자재, 작물 생육 등에 대한 신뢰성을 빠르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농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농업부문 탄소중립으로도 연결된다. 안 원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산업발전으로 파괴된 환경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첨단기술이 필요하다"며 "농진원은 지열 히트펌프 시스템과 다겹보온 커튼시설, 바오이차 등 다양한 저탄소 농업기술을 보급해 지난해 온실가스 5만8000톤을 감축했다"고 설명했다.
농진원의 주력 사업인 기술 이전과 사업화 지원도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
안 원장은 "특허청이 보유한 국가소유 특허는 8900여 건이고, 그 가운데 농진청이 개발한 국유특허가 절반 수준인 4200여 건인데 지난해 국유특허가 민간으로 이전된 사례는 1593건으로 사업화 성공률은 43.1%에 달한다"며 "농업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미국농업연구청(USDA)의 최근 5년간 사업화 성공률도 35.1%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사업화 성공률이 높은 이면에는 제품공정개선과 판로지원, 시제품개발까지 기술사업화 전주기를 함께 하는 농진원의 역할이 있다.
안 원장은 "2016년 안동제비원전통식품이라는 기업에 명인의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DIY 세트 기술을 이전했는데 이후 2018년 농업기술실용화 우수기업인 포상에서 농진청장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매출액을 51억 원이나 달성했다"며 "전주기 지원사업을 통해 긴 호흡으로 기업 성장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식품 벤처와 창업 생태계 조성도 앞으로 힘을 쏟아야 하는 분야다. 안 원장은 "신선한 아이디어로 벤처 창업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기업이 많지만 자금 운용이 어려워 얼마 못가 폐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차원에서 창업 생태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농진원은 자금지원과 경영컨설팅 등 벤처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그린바이오와 스마트농업 등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육성책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올해는 4월에 농진원의 농식품벤처창업센터를 서울북부에도 추가해 총 8개 권역에서 벤처와 창업 인프라를 운영한다. 전북 익산 함열 농공단지에는 2024년까지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도 조성할 계획이다.
농업기술을 수출하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이미 카자흐스탄에는 한국형 스마트팜 온실을 수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베트남에도 시범온실을 착공했다. 베트남에서는 멜론, 고추 등 민간종자업체의 개발종자로 실증을 진행한다.
안 원장은 "농진원은 코로나19로 해외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중에도 농산업체와 함께 K-농업기술을 바다 건너로 보내고 있다"며 "특히 신품종 종자, 농기자재, 스마트팜 등의 분야에서 농업기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고, 글로벌 농산업 시장을 적극 개척하겠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불거진 식량안보 문제 해결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릴 만큼 곡창지대다. 밀과 보리, 쌀, 귀리 등 식량작물의 수출 제재와 가격 상승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했고, 국내 물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에 농진원은 안정적인 종자 보급에 힘을 쏟고 있다. 특수미와 밭작물, 맥류 등 종자와 고구마, 약용, 과수 등의 종묘도 생산해 농가에 보급한다. 지난해 농진원은 2307톤의 종자를 보급했고, 올해는 2674톤의 종자를 보급할 계획이다.
안 원장은 "종자종합처리센터와 민간육종 연구단지를 이용해 종자 보급 인프라를 구축하고, 첨단육종기술서비스와 종자생명산업 맞춤형 인력을 양성해 경쟁력을 높이려고 한다"며 "특히 기능성 농작물의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종자 보급을 확대해 농가 소득도 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