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코로나19 재유행이 본격화하자 정부는 7월13일 ‘코로나19 재유행 대비 방역·의료 대응방안’을 발표합니다. 핵심은 ‘과학방역’, ‘국민참여형 거리두기’, ‘자율책임방역’, ‘고위험군 관리, 중증·사망 최소화’입니다.
이런 가운데 격리자에 대한 생활지원금과 유급휴가비 지원은 축소됐고, 선별검사소 부족으로 주말 PCR 검사 받기는 쉽지 않아졌습니다. 당장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방역을 국민들 스스로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이냐”며 ‘과학방역’에 대한 불만이 불거졌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질병관리청’에 대해 ‘질병구경청’, ‘질병관람청’이라는 비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야당은 ‘각자도생 방역’, ‘국가주도가 아닌 국가도주 방역’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과학방역’은 도대체 뭘까요? 현 정부가 그동안 제시해왔던 코로나19 대응책과 관련 발언을 통해 짚어봤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K-방역은 정치방역’이라며 ‘과학방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방역’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죠. 구체화된 시점은 4월27일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보건의료)’을 통해서입니다.
대선 후 3월21일 출범한 ‘코로나19 비상대응 특별위원회(위원장 안철수)’ 활동의 결과물이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코로나19 대응 목표로 △과학적인 방역정책을 통해 국민신뢰 제고 △새정부 출범 100일 내 지속가능한 코로나 대응체계 재정립 △신종변이 및 가을·겨울철 코로나 재유행에 철저한 대비 등 3가지가 담겼습니다. 4대 추진방향은 △과학기반 △지속가능 △취약계층 보호 △백신·치료제입니다. 주요 내용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정책 추진, 근거에 기반한 일상회복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생활방역 체계 확립(국민참여형 거리두기) 등입니다.
그런데 3대 목표와 4대 추진방향 제시에 앞서 로드맵에서는 ‘참고: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한계’라며 이전 정부의 ‘초기 K-방역’은 성과에 매몰됐고, ‘정치방역·자만방역·방심방역’으로 국민신뢰가 저하됐다고 지적합니다.
6월말~7월초 하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만명, 2만명, 3만명으로 급증하자 정부는 ‘과학방역’을 내세우며 지난달 13일과 20일 두 차례 대응책을 제시합니다. 여기에는 앞선 로드맵의 과학방역 정책이 녹아 있습니다.
코로나19 재유행 후 전문가들의 구체적인 설명도 있었습니다. 21명의 민간 자문위원들로 구성된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 정기석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브리핑에서 ‘과학방역’에 대한 기자단 질의에 “과학은 아주 광범위한 범위이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도 과학이다. 앞으로는 전체적인 코로나 위기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적인 코로나 위기관리’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그는 “과학은 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근거 중심의 정책을 만들어 나가겠다. 근거가 없는 경우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집단지성으로 결론을 내면 그것도 하나의 과학적 근거라고 의학에서는 간주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다른 전문가 의견을 보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질병청이 주최한 ‘코로나19 전문가 초청설명회’에서 김남중 서울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과학적 방역이라 함은 현 상황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다 모아서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한다. 이런 것이 목표이다. 현재 방역 목표는 중환자 수 최소화, 사망자 수 최소화”라며 “변이의 특성, 백신과 치료제를 갖고 있는 점 등 모두 고려해서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한다. 그런 것이 과학방역대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문제는 과학방역 기반 자율책임방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확진자는 늘고, 지원금은 줄고, 검사소는 부족하고, 그럼에도 정부가 ‘자율책임방역’만 강조하다 보니 국민들 입장에서 “국민들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컸던 것이죠. 또한 “통제 중심의 국가주도 방역은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우리가 지향할 목표가 아니다”라는 지난달 19일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의 발언은 논란을 더 키웠습니다.
한 의료전문가는 최근 이투데이와 만나 “지난 2년6개월의 코로나19 상황에서 얻은 방역경험을 토대로 과학방역을 설계하고 근거를 찾으면 안되는 것인가?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지난 경험을 ‘정치방역’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맞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3~4월 이후 오미크론 변이 출현으로 더 이상 대규모 거리두기 방역은 효과가 크지 않다. 어려운 경제상황, 국민피로감을 고려해 참여형 거리두기를 제시했다고 본다. 다만 ‘본인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세요’라는 듯한 메시지 전달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백 청장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에서 “통제 중심의 정부 주도 방역이 지속성이 없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앞부분이 조금 전달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 약간 오해를 일으켰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코로나19 전문가 초청설명회’에 참여했던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방역정책의 연속성과 관련해 “방역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 2년 반 동안의 경험과 희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며 “3월 오미크론 대유행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방역정책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완전히 일어났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오미크론 대유행 이전에는 전체 감염자 규모를 줄이려는 정책이었다면, 오미크론 이후부터는 확산 저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확산을 어느 정도 용인다는 것”이라며 “정책방향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연속선상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러한 점을 공개 지적했습니다. 신현영 대변인(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을 통해 “방역당국의 과학방역의 목적은 ‘근거를 바탕으로 피해 최소화 전략’ 즉 중환자수와 사망자수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2년간 정은경 전 청장이 대응했던 ‘피해 최소화’ 정책방향과 동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신 대변인은 최근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도 “과학방역에 과학이 부재하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백경란 청장도 지난달 28일 ‘코로나19 전문가 초청설명회’ 답변에서 “지금 근거가 2년6개월 동안 쌓인 근거를 기반으로 해 우리가 정책을 최대한 정교하게 나가겠다는 계획을 말씀드린다”라며 지난 2년 반의 방역을 근거로 하겠다는 뜻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늑장대응으로 생명을 잃는 것보다 과잉대응으로 비난 받는 게 낫다.” 감염병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의 대사입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 아닐까요? ‘과학방역’에 과학이 담길 수 있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