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정부 주도로 규모를 키워 온 모태펀드를 민간 중심으로 돌리려는 새 정부 기조에 벤처투자(VC)업계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기조 등 국내·외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벤처투자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온 정부가 규모 축소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VC업계의 우려에도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번 정부가 민간 주도 벤처투자의 물꼬를 트는 데 대한 기조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정부와 업계 간 불협화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일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에서 VC업계 관계자들과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최근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고(高) 위기’로 벤처투자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자 관련 내용을 논의하고 벤처·창업 정책에 이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는 모태펀드 규모 축소를 놓고 정부와 업계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부는 민간모펀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민간 업계는 정부 주도 모태펀드의 필요성에 대해 입장을 내세웠다.
VC업계 대표들은 국내 모태펀드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김창규 다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재 벤처투자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며 “하반기 펀드레이징을 시작하면서 LP(출자자)를 구해야 하는데, 정부의 민간 주도 기조 신호로 다들 보수적으로 변해 펀드결성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적인 시각을 바꿀 정부의 신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세연 유티씨인베스트먼트 대표도 “모태펀드를 민간 주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엔 동의하나, 연착륙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펀드 시장 상황을 볼 때 모태펀드가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단순히 민간으로 넘기기보다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VC협회 차원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갑작스러운 세계 경제 침체로 민간에서 배팅할 수 있는 소스들이 채권시장으로 흘러가민간이 직접 나서서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 시장 상황에선 모태펀드를 확대하거나 축소한다는 메시지 대신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작년처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민간 주도 펀드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됐다. 송인애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민간 주도로 1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했는데, 수탁은행이 모태펀드가 아니어서 수탁이 안된다고 거절을 당했다”며 “어렵게 수탁을 해도 은행의 간섭이 심해 전반적으로 민간이 나서서 투자하기 힘들다”며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VC업계의 잇따른 지적에 이 장관은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을 고려해 민간 주도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몸을 낮췄지만, 벤처투자시장이 민간 주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은 고수했다. 이 장관은 “생태계 변화 기조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도 “모태펀드 관련해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착륙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최대한 모태펀드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부족한 부분은 정책자금을 최대한 동원에 업계에 타격이 없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