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대기의 교란으로 한계가 있는 지상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서 작동하는 우주망원경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 건 1990년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부터다. 지난 30년 동안 지구 상공 540㎞에서 궤도를 돌며 허블망원경은 수많은 천체 사진을 지구로 보냈고 신문의 과학면을 장식했다. 허블망원경은 반사경 지름이 2.4m나 돼 먼 우주의 이미지도 꽤 선명하게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시간이 흐르자 우주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성능이 더 좋은 우주망원경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 결과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무려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쏟아부은 결과물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우주로 발사됐고, 여러 준비 단계를 거친 뒤 6월부터 가동에 들어가 지난달 첫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제임스웹은 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다. 반사경만 봐도 지름이 6.5m라 면적이 허블의 6.3배로, 그만큼 더 많은 빛을 모을 수 있어 해상력이 높다. 이처럼 큰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리려면 엄청난 크기의 로켓이 필요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연구자들은 작은 육각형 18개를 실어 보내 우주에서 스스로 조립하게 만드는 기발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극복했다. 제임스웹 반사경이 벌집처럼 보이는 이유다.
엄밀히 말해 제임스웹은 허블을 대신하는 게 아니다. 관측하는 빛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허블은 파장 0.1~2.5㎛(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즉 자외선과 가시광선(0.4~0.7㎛), 적외선 일부를 볼 수 있다. 반면 제임스웹은 0.6~28㎛ 범위로 가시광선에서는 빨간빛만 감지할 수 있지만, 대신 광범위한 적외선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한마디로 적외선 망원경이다.
‘13조 원이나 쓰고 왜 가시광선도 제대로 못 보게 만들었지?’ 이런 의문이 들 텐데 모든 영역의 빛을 다 감지할 수는 없어 제임스웹은 적외선에 집중하기 위해 가시광선을 희생한 것이다. 제임스웹의 주된 목표가 138억 년 전 빅뱅 직후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적외선 영역의 데이터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빅뱅 이래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그 결과 별에서 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편이’ 현상이 생긴다. 오래된 천체에서 오는 빛일수록 거리가 멀므로 적색편이도 커 빛의 파장이 적외선으로 바뀐 상태다. 따라서 제임스웹이 찍은 천체 이미지를 그대로 내놓으면 불그스름한 흔적만이 보이는 검은 우주일 것이다. 우리가 보는 총천연색 천체 이미지는 파장을 가시광선 영역으로 보정한 결과라는 말이다.
나사가 제임스웹 최초의 천체 이미지 5장을 공개하기 하루 전인 7월 11일 백악관이 이 가운데 하나를 먼저 공개하는 새치기를 하기도 했다. 만일 관련 연구자가 이런 일을 했다면 학계에서 매장됐겠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당사자이다 보니 오히려 나사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다. 연구예산을 짜는 정부에서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중을 위해 천체 사진들을 공개하고 하루가 지난 13일 나사는 제임스웹이 모은 관측 데이터를 세계에 공개했다.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각국의 천문학자들은 각자 관심이 있는 데이터 분석에 뛰어들었고 부랴부랴 논문을 써서 관련 학술지에 제출했다. 출판 전 논문을 수집하는 웹사이트(arxiv.org)에 올라와 있는 논문들을 보면 놀라운 결과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빅뱅 이후 3억 년이 지난 시점에 형성된 은하를 발견해 허블의 기록(4억 년 뒤)을 깼다는 논문들이 여러 편 있고, 우주 초기 은하들은 형태가 불규칙했다는 기존 이론과는 달리 대부분 우리 은하처럼 원반 형태라는 결과를 담은 논문도 있다. 우주의 구조가 생각보다 빨리 형성됐다는 말이다.
제임스웹은 앞으로 약 20년 동안 작동할 예정이다. 이 사이 얼마나 많은 놀라운 관측이 이뤄지고 그 결과 선명하게 그려질 초기 우주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첫 데이터를 분석해 초기 은하 발견을 보고한 한 논문의 서두에서 저자들은 “13일 공개된 데이터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으로, 천문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상징하고 있다”고 썼다. 딱딱한 과학 논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흥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