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헌트’ 인터뷰로 만난 이정재 감독 역시 실제로 “칸영화제가 좀 더 많은 셀럽을 초대하기 위해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영화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런 얘기가 많았죠. 그런데 올해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은 3편만 선택받았어요. 코로나 때문에 2년 정도 (해당 부문 작품 상영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서 올해 한국에서만 50여 편이 출품됐다고 하는데도요. 전 세계적으로는 2000여 편이 넘었고요. 그 많은 영화 중에서 제일 유명한 감독이 이정재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는 거죠.”
칸영화제 초청은 그로서도 예상치 못한 운이었다. 고생스러웠던 ‘헌트’ 제작과정을 떠올리면, 그런 상상을 할 만한 심리적 여유도 없었다.
‘헌트’는 당초 충무로를 돌던 ‘남산’이라는 첩보물 시나리오를 이 감독이 액션 중심의 상업영화 대본으로 고쳐 쓰면서 캐스팅과 투자를 끌어냈다. 촬영과 후반작업 과정까지 꼬박 5년 여의 세월이 소요됐다.
“연기자 출신 신인 감독이 잘 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투자배급사가 제작비를 많이 할애하려 하지 않아요. 전례가 없기에 위험부담이 있다는 거죠. 시나리오로 입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다양한 볼거리와 감정을 담은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압박이었어요.”
배우 출신 감독이기에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투톱 구조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게다가 균형을 잘 맞추지 않으면 캐스팅이 안 됩니다. (배우들로서는) ‘저 역할이 더 좋아 보이니 저거 줘’하는 이야기들이 항상 나오니까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2016년 탄핵정국은 영화의 메시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잖아요. 국민들이 양극으로 갈라져서 대립하는 걸 보니 누군가 우리를 대립하게끔 부추기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색깔이 강한 뉴스가 쏟아져 나올 때, 우리의 가치관이나 이념이 과연 옳은 곳에서 온 건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걸 주제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헌트’는 이념에 매몰된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안기부 부장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각자의 ‘사건’을 거쳐 심리적 변화를 겪는 과정을 다루게 된다.
당초 시나리오에 있던 박평호와 탈북 대학생(고윤정)의 성적인 장면은 모두 삭제하는 등 이 감독의 손을 거치며 굵직한 변화도 생겼다. 불필요한 정사신은 "대다수의 관객이 선호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에”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결과물의 완성도를 쉽사리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감독은 ‘헌트’ 연출을 마무리 지었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오징어 게임'이 제 아무리 큰 흥행을 이뤄냈더라도 자신의 연출작을 연이어 칸영화제에 선보이는 기회는 얻지 못했을 테다. 충분히 준비된 자를, 하늘이 도운 셈이다.
10일 정식 개봉을 앞둔 이 감독은 그 공을 함께 일한 사람들과 나눴다.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사전 준비작업)과 후반작업에서 숨은 스태프를 만나요. 이분들 역시 누구 못지않게 본인들 영화가 흥행하고 호평받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아티스트예요. 그러니 ’헌트’는 이정재 하나만 보고 칸영화제에 초청된 게 아닙니다. 영화의 주제는 물론이고 많은 스태프와 배우가 모여서 함께 만든 결과물 덕에 뽑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