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 티탄 "피해자 응원 바라" 호소…변호인 "미군도 이례적으로 봤던 사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목격자가 한국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한국 법정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베트남인들의 증인 신문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9일 열린 재판에서 베트남전 당시 민병대원이던 응우옌 득쩌이 씨는 "1968년 2월 12일 남베트남 의병대·미군과 함께 한국 군인들이 퐁니마을 주민을 학살하고 시신을 불에 태우는 것을 직접 봤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시작됐다. 응우옌 티탄 씨는 응우옌 득쩌이 씨의 조카다. 응우옌 티탄 씨 역시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법정 진술을 위해 베트남에서 한국을 직접 방문했다.
응우옌 득쩌이 씨는 "한국군이 퐁니마을에서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다, 총소리와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마을에서 한국군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며 "(당시 학살 가해자는)베트콩이 아니라 한국인이며 지금 법정에 있는 (한국)사람들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군이 퐁니마을을 떠난 후) 남베트남 의병군·미군과 함께 퐁니마을에 들어가서 두 군데에 쌓여있는 시체더미를 발견했다"며 "같이 들어간 사람들과 시체를 모았고, 대부분이 불에 타 있었다"고 증언했다.
퐁니마을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위령비에는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이 74명에 달한다고 기록돼 있다.
응우옌 득쩌이 씨는 변호인이 사망자들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자 "(사진 속)가슴이 잘린 여성은 당시 살아있었지만 다낭으로 후송 후 사망했고, 다른 사진 속 사람은 한쪽 팔이 잘린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왼쪽 배에 총상을 입어 내장이 밖으로 나온 상태여서 의식이 없던 응우옌 티탄 씨가 수술 후 의식을 되찾자 누가 (이런 일을) 했냐고 물었다"며 "당시 응우옌 티탄은 '따이한'이라고 했다, 베트남에서 옛날에 한국을 따이한이라고 불렀다"고 답했다.
재판에 앞서 서울시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한베 평화재단 등 시민단체 주관으로 열린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응우옌 득쩌이 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싶지 않다"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건 당시 8살에 불과했던 응우옌 티탄 씨 역시 "한국 시민 여러분과 언론 매체들이 저 같은 피해자를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응우옌 티탄 씨 측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당시 이 사건은 미군이 보기에도 이례적이라 미군이 한국군의 의견을 물어본 기록도 있다"며 "당시 우리 군은 사건 수행 주체가 한국 군복을 입은 베트콩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 갔지만, 이후 마을 주민이 베트남 의회에 항의하는 등 문제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응우옌 티탄 씨는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에서 7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