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따온 문화‘재(財)’, 재화 가치 있는 물질에 한정한 협소한 개념
유네스코 세계유산, 무형유산, 기록유산 포괄하는 ‘국가유산’으로 바꿔야
중,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정읍사’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백제시대 노래로 고려 때 궁중음악에 편입돼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국립국악원의 대표적인 아악곡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읍사’가 문화재 지정의 사각지대에 있어 지금까지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일본식 문화재체제 60년, 국가유산체제로의 패러다임 전환’ 정책토론회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가치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포괄할 수 있는 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이같이 전했다.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참고해 1962년 국내 도입한 ‘문화재’ 체제가 60여 년간 이어지면서 다양화된 문화유산 개념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세계적 기준인 유네스코 분류를 포괄하는 ‘국가유산’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상우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발제를 통해 “외람되지만 일본의 1950년 문화재보호법을 (우리나라가) 복사해온 느낌이 있다”고 문제를 짚었다.
특히 문화재라는 표현에 들어가는 ‘재(財)’ 자에 “금전적 가치가 있는 ‘물건’에 한정하는 의미가 있다”며 현행 체제의 한계점을 설명했다.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유산을 △유형문화재(국보, 보물) △무형문화재 △기념물(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민속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
건축물, 서적처럼 재화 가치를 강조한 물질 중심 분류로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유네스코는 △세계유산(문화, 자연, 복합유산) △무형유산 △기록유산 등 보다 복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우리나라 체제와 차이를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15건 중 자연유산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지정)', '한국의 갯벌(2021년 지정)' 등 2건에 불과한 현실도 아쉬운 지점으로 꼽혔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경립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가치를 다른 문화유산과 동등한 위치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유산’으로 전환은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체제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지정)', '새마을운동기록물(2013년 지정)' 등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해당하는 유산을 전담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산재해 있는 등 문제도 지적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8월 중 ‘국가유산기본법’을 발의해 올해 하반기 중 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재청의 명칭을 국가유산청으로 변경하는 내용 역시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거쳐 정부조직법 개정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정 교수는 “’문화재’라는 단어는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미래 세대에 물려줘야할 것이라는 좋은 의미를 너무 좁게만 보고 있다”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사용해오고 있는 ‘헤리티지’의 적절한 번역인 ‘유산’으로 뒤늦게나마 전환하는 과정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