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물가상승률 7000% 육박
인플레 장기화할 경우 사회 곳곳 부작용 초래해
브라질, 당시 가상통화 개념 URV로 초인플레 극복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이 치솟는 물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990년대 관성 인플레이션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전개됐던 브라질의 과거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한 달 사이 물가가 50% 넘게 오르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체감하는 현실 물가가 오르면, 두 번째 사람들 사이에는 앞으로도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형성돼 물가를 밀어 올리게 된다. 물가 상승을 예상한 사람들이 물건을 사재기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제도화'다. 경제·사회 구조가 물가 상승을 전제로 재구성돼 제도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이 굳어진다. 예를 들어 택시 요금 개정이나 공중전화 요금도 물가 상승을 반영하게 되고, 전기·가스비, 급여, 임대 계약서 등 사회 전반이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미래 지급액을 결정하게 되면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1980년대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은 10년 가까이 관성이 붙게 됐다.
브라질 정부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1986년 정부 주도로 가격 인상을 금지하는 '가격 동결'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가격 인상을 정부가 일일이 단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가격 체계에 왜곡이 발생하면서 사회·경제적 혼란이 커졌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뾰족한 수가 없었던 정부는 수차례 '가격 동결' 정책을 반복하면서 역효과가 이어졌고, 결국 1990년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은 한때 7000%까지 치솟았다.
브라질을 구원한 것은 젊은 경제학자들이 고안해낸 '가상통화 개념'인 URV(Unit of Real Value, 실질 가치 단위)였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통화로, 미국 달러화에 가치를 연동시킨 가치 단위다. 브라질 정부는 이를 토대로 전국의 상점에 URV로 표시한 가격과 함께 법정화폐였던 크루제이루로 표시된 가격을 붙였다. 급여와 교통요금은 물론 세금에도 가상통화 URV와 현실 통용화폐 크루제이루의 두 개의 가격이 표시됐다. 신문에는 URV와 크루제이루 교환비율이 매일 업데이트 됐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오르는 만큼 법적 통용화폐인 크루제이루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고, 이 때문에 국민도 크루제이루 가치는 계속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실제 지불을 크루제이루로 해도, 실질 가치를 URV로 생각하게 됐고, 이는 곧 URV 가격 안정으로 이어졌다. 닛케이는 URV가 달러에 연동된 가치를 제공하면서 장기적으로 물가 안정을 뒷받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민 사이에서 가상통화였던 URV가 법정화폐인 크루제이루보다 더 신뢰감이 높아지면서 브라질 정부는 '헤알(Real)'로 법정통화를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즉 가상통화가 '진짜(Real) 돈'이 된 것이다.
닛케이는 브라질 사례에서 보듯 물가 상승세가 지나치게 장기화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사회 곳곳에서 스며들어 여러 위험을 촉발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브라질이 가상통화 개념인 URV를 통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는 당시 미국 물가가 안정된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처럼 미국 물가가 급등하고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에 최근 영란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장기화하면 더 깊은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 억제를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