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흔한 미국의 UFO인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 비행 동물 ‘진 자켓’(Jean Jacket)의 등장이다. 과연, 주인공들은 이 초인간적 괴물을 길들일 수 있을까.
제목 ‘놉’(NOPE). 그 자체가 답일지 모르는 조던 필 감독의 신작 ‘놉’이 국내 개봉을 앞두고 11일 언론에 정식 공개됐다.
‘겟 아웃’으로 전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킨 조던 필 감독은 흑인 당사자가 느끼는 미국 사회의 차별적 인식을 영화적 공포 상황으로 영리하게 치환하며 호평받았다. 국내 개봉 당시 214만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 매출액 2억2000만 달러(한화 약 2765억 원)를 넘기는 등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뒀다.
스릴러 장르에서 인종 문제에 관한 도발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그의 장기는 두 번째 영화 ‘어스’에서도 나타났지만, ‘겟 아웃’만큼의 대중적 파급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세 번째 작품 ‘놉’은 제작비만 6800억 원(한화 약 885억 원)으로 알려진 대작이다. UFO나 우주선 같은 비행물체가 등장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SF영화는 백인 감독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을 깬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하고, 주목받길 원하고, 미쳤다.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라는 시놉시스가 철저히 본 내용을 숨기는 전략으로 기대감을 높이는 가운데, ‘놉’은 할리우드 촬영장에 훈련된 말을 제공하며 영화 제작의 변방에 머무르던 말 조련사 헤이우드 남매(다니엘 칼루유야, 키키 파머)가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 비행 동물 ‘진 자켓’의 등장에 맞서 맹활약하는 새로운 종류의 영웅물이다.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며 땅 위의 인간 무리를 거칠게 흡입하는 ‘진 자켓’은 전에 본 적 없는 크리쳐다. 한바탕 인간사냥을 마친 뒤 마치 트림을 내뿜듯 더러운 기체를 잔뜩 배출하고, 소화를 시킬 때쯤 다시 나타나 인간이 지나고 있던 열쇠나 함께 빨려 들어온 지상의 조형물 등을 비수처럼 땅으로 토해내며 다시금 인간을 공격한다.
예상치 못한 공포 조성의 장면 장면마다 함께 흘러나오는 효과음은 ‘놉’의 긴장감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미 잡아 먹힌 사람들이 떼로 내지르는 괴성과 고통 섞인 흐느낌이 합쳐져 한층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편 액자 속 이야기처럼 삽입된 침팬지 ‘고디’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TV 프로그램 녹화 중 인간을 피범벅이 될 때까지 해친 침팬지 사건을 들춰내며, 그 누구도 함부로 야생의 무언가를 길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이 에피소드에는 ‘옥자’, ‘미나리’ 등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에게 익숙해진 스티븐 연이 출연한다.
‘놉’은 준수한 크리쳐물인 동시에,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할리우드 서부극의 테두리 안에서 흑인 남매를 전면에 내세운 도발적인 장르물이기도 하다.
이들 남매는 ‘영화의 시작은 말에 올라탄 흑인을 촬영한 2초가량의 영상이었다’며 할리우드 역사의 시작에 자신들 선조의 지분 있음을 자신 있게 설파한다.
‘진 자켓’의 존재를 알게 된 남매가 그 존재를 피해 도망가기보다는 차라리 가장 먼저 촬영해서 세상에 알리겠다고 마음먹는 이유도 그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오빠 제임스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가 말을 타고 달리며 ‘진 자켓’을 유인한다면, 여동생 ‘질 헤이우드’(키키 팔머)는 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집요하게 시도한다.
장르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연출 역량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 역사에서의 ‘분명한 역할'을 강조하는 인종적 야심을 드러낸 결과물 ‘놉’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북미에서 먼저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미 1억 달러(한화 약 1300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리며 대규모 제작비용을 회수했다.
오는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