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 교수가 '경제안보의 개념과 최근 동향 평가' 보고서에 언급한 개념이다. 국가의 군사·외교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제적 번영은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면서도 여러 국가와 대외적 균형 맞추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특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패러다임이 깨진 상황에서 우리는 양국 사이에서 어떤 기조를 가져가야 할까.
다음은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 최희남 전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등 전문가 4명의 상황 진단과 제언이다.
“마땅히 개방과 협력을 견지해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 (中외교부)
"신중하게 판단하길 바란다." (왕이 中외교부장)
전자는 중국 외교부가 한중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발전을 위해 제시한 요구사항 중 하나로 미국이 한국·대만·일본에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Chip 4)'에 가입하지 말거나, 가입하더라도 중국이 배제당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얘기다. 후자는 왕이 외교부장이 9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박진 외교장관이 칩4 예비회의 참여 사실을 밝히며 이해를 구하자 내놓은 답이다.
칩4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미중의 압박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 "칩4 들어가는게 맞다"고 말한다.
연 팀장은 우선 "‘칩4′이란 용어보단 '팹4(FAB 4)'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 반도체 전 공정이 아닌 팹(제조)에 국한된 협의체기 때문"이라 설명하면서 "칩4엔 당연히 참여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칩4는 중국 자극 보단 반도체 수급 문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화의 장이자, 보호주의에 따른 갈등 요소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라며 "덧붙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21%의 생산비중을 차지하는 우리가 팹 강자들의 협의체에 당연히 참여해 우리 의사를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 반도체지원법에 따르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삼성, SK 등)이 막대한 보조금을 받게 되는데, 대신 10년간 중국에 28나노미터 이하 시스템반도체 시설의 신·증설을 못하게 돼 있다"며 "우리의 주력제품인 메모리반도체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어 칩4를 통해 사전에 논의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모호한 형태를 취하긴 어려워졌으며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 두드러졌다"며 "입장 정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기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반발 가능성에 대해선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술 분야에선 미국과 같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우리가 칩4에 들어가지 않을 경우 생산부문 강자인 대만의 TSMC와의 격차가 훨씬 커질 것"이라며 "TSMC와 같이 가는 방향으로 칩4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칩4는 원천기술력과 설계·장비에 강점을 가진 미국이 메모리 제조기술의 강자 한국, 파운드리(위탁생산) 강자 대만, 소재·장비의 강자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삼성전자 역시 생산업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과 함께’라는 환상이 깨진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균형을 잘 잡아야한다는 신중함도 요구된다.
연 팀장은 "공급망은 안정성과 다변화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모든 국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동안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과도하게 높았던 중국 의존도를 다변화 차원에서 차츰 줄여나가면서도 질적으론 중국과도 강한 협력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요소수 사태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최 전 차관보는 "미국과 적대적인 상황인 중국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상당한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며 "경제안보가 중요하지만 정작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라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기술분야의 경우 미국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지만, 그 외 일반적 무역의 경우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했으며, 조 교수는 "중국과 싸우자는 것은 아니지만 결기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안보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 발을 뗀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할까. 무엇보다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연 팀장은 "새정부 들어 출범한 경제안보비서관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좀 경제안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거버넌스, 운영체계를 확립해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급망 이슈만 주로 다뤄지지만 이외 첨단기술, 디지털(사이버) 안보 등 3가지 중요 분야를 모두 다뤄야 한다"며 "특히 사이버 안보의 경우 산업, 금융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국방부 외에 경제관련 여러 부처도 함께 운영체계를 확립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경제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2020년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부를 설립해 '경제안보' 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하도록 했다.
조급하지 않게 숨고르기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 전 차관보는 "경제안보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제안보비서관을 신설한 것 자체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며 "다만 경제 안보라는게 한 쪽 편만 드는게 아닌 균형을 잘 잡아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속도를 내기보단 장기간의 비전을 가지고 상당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대통령께서도 가끔 경제안보 회의를 주재, 참석하며 경제안보비서관 조직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성과로 이어진다"며 "경제 뿐 아니라 다양한 비 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의사결정, 정책결정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