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으로 여겨졌던 원숭이두창 감염사례가 최근 전 세계에서 크게 늘고 있습니다. 급성 발열·발진성 질환인 원숭이두창은 올해 5월7일 영국에서 1건의 유입사례 보고 후 약 100일 만에 전 세계 92개 국가로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7월25일 원숭이두창 관련 국제공중보건위기(PHEIC)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WHO는 17일(현지시간)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 책임자들이 브리핑에 나서 원숭이두창 감염 차단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현재 전 세계 92개 국가에서 약 3만5000명 이상의 감염이 보고됐고, 12명이 사망했다”며 “적극적인 공중보건 대응으로 감염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WHO는 이날 백신 접종 후 ‘돌파감염’ 사례도 언급했습니다. 17일 브리핑에 참석한 WHO 긴급대응프로그램 원숭이두창 책임자 로자먼드 루이스 박사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백신 접종자 중 일부에서 돌파감염 사례가 보고된 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다. 백신이 어떤 상황에서든 100% 완벽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처음부터 이 백신(진네오스)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고, 확실한 효능 데이터나 효과 데이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브리핑과 함께 WHO는 이날 전 세계 원숭이두창 발생현황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17일 오후 5시 CEST(중앙유럽 서머타임) 기준 2022년 1월1일 이후 6개 지역 92개 국가에서 원숭이두창 사례가 발생했고, 실험실 확진자는 총 3만7736명, 사망자는 12명, 연관 사망이 의심되는 사례 179명이 보고됐습니다. 실제 31주차(8월1~7일) 감염은 6217건이었으나, 32주차(8월8~14일)는 7477건으로 1000건 이상 늘었습니다. 미국이 1만1915건으로 가장 많았고, 스페인 5792건, 독일 3187건, 영국 3055건, 브라질 2985건, 프랑스 2749건 등이었고, 이들 국가와 캐나다, 네덜란드, 페루, 포루투갈 등의 발생 건수가 더하면 전 세계 감염사례의 88.4%에 달합니다. 특히 보고서는 전 세계 원숭이두창 위험을 중간 정도로 평가했습니다. 지역별 위험도는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동부 지중해·동남아시아 지역은 높음 및 중간, 서태평양 지역은 낮음입니다.
원숭이두창 예방율이 약 85%로 알려진 두창백신 ‘진네오스(JYNNEOS)’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덴마크 제약사 바바리안 노르딕이 제조해 보급하고 있죠. 이는 3세대 두창 백신으로, 현재 원숭이두창 예방용으로 허가된 유일한 백신입니다. 기존 사람두창에 사용됐던 1, 2세대 백신의 경우 접종방법이 까다롭고 이상반응(부작용)이 많아 원숭이두창에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바바리안 노르딕은 췌장암 치료제를 개발하던 회사였는데, 전 세계 국가들이 바이러스 테러에 대비해 두창 백신을 비축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3세대 두창백신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해당 백신 공급처는 미국 정부가 유일했었지만, 올해 전 세계적인 원숭이두창 감염 확산으로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된 것이죠.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존 1·2세대 백신에 비해 안전성과 효과성이 개선됐고, 접종금기 대상이 거의 없어 원숭이두창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선 6월21일 첫 원숭이두창 감염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이후 현재(8월18일)까지 추가 감염사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건당국과 의료전문가들은 추가 감염 발생이 있다고 봅니다. 이에 정부는 이11일 ‘진네오스’ 1만 도즈(5000명 분)를 국내에 도입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생물테러 대비용으로 2세대 두창백신을 비축 중이지만, 3세대 백신은 없는 상황이어서 7월 긴급도입 결정에 이어 제조사와 공급계약을 맺고 최근 도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도입물량은 왜 5000명분 뿐일까요? 이와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진네오스 도입 당시 “3세대 백신은 바이러스 노출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위험군은 확진환자 밀접접촉자, 확진환자와 접촉하는 의료진 등입니다.
이에 대해 신상엽 KMI한국의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원숭이두창은 밀접 접촉이 아니면 사람 간 전파가 쉽게 일어나지 않으며, 백신 안전성과 비용효과성을 고려했을 때 원숭이두창이 국내에서 유행한다고 할지라도 전국민 예방접종은 적절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링 백시네이션(ring vaccination)’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링 백시네이션’은 전염병 전파 차단을 위해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및 역학적 연관성이 있는 대상자만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입니다.
원숭이두창 백신 접종과 관련 질병관리청은 12일 ‘원숭이두창 대응지침 3판’을 통해 자세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접종 대상자는 18세 이상 성인으로 노출 전 접종자는 △치료병상 의료진 △진단검사 실험실 요원 △역학조사관 등이고, 노출 후 접종자는 역학조사 결과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고위험을 포함한 ‘중위험’ 이상 노출자 중 노출 후 14일 이내인 접촉자입니다. 고위험 노출자 중 노출 4일 이내는 접종이 ‘권고’됩니다. 반면 고위험 노출자 중 노출 5~14일 이내와 중위험 노출자로 노출 4일 이내의 경우 접종 ‘허용’이 적용됩니다. 이는 접종 ‘허용’은 접종 이득이 명확하지 않아 예방접종 권고 대상은 아니나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접종이 가능합니다. 접종 방법은 피하주사로, 4주 간격 2회 접종합니다.
의료 전문가들은 원숭이두창 예방을 위해 철저한 개인위생 관리와 발생지역 방문 자제 등을 당부합니다. 이시형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원숭이두창 발생지역 방문을 자제하고, 부득이하게 방문할 경우 타인의 혈액, 체액, 피부 등에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물건 접촉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어 손을 비누와 물로 씻거나 알코올 소독제로 자주 소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치류나 원숭이 등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비말 등을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하므로 마스크 등 개인보호구 사용을 추천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