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증거인멸' 박철 전 부사장 징역 2년…SK케미칼·SK이노 무죄

입력 2022-08-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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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T·MIT 독성실험 연구보고서 은닉 지시…퇴사자에도 요구"
"SK케미칼·SK이노베이션,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무죄…피해 연관성 없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가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박철 전 SK케미칼 부사장 등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전 부사장 등은 SK케미칼 전신인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당시인 1994년 10∼12월 서울대에 의뢰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를 은닉한 혐의를 받아왔다. (연합뉴스)

'가습제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박철 전 SK케미칼 부사장에게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다. 반면, SK케미칼과 SK이노베이션엔 무죄를 선고했다.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등 혐의를 받는 박 전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증거인멸 혐의로 함께 기소된 임원 두 명은 징역 1년 6개월을, 다른 두 명은 징역 1년과 징역 10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다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SK이노베이션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직원 한 명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SK케미칼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회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SK케미칼은 형사고발 된 후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고 PHMG 성분과 가습기 살균제의 관련성·제조용법도 알고 있었지만, 박 전 부사장 등은 직원에게 위증하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SK케미칼 임원 김모 씨는 검찰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관련된 자료를 압수당하면서도 개인 노트북·USB에 이를 저장해 직원에게 삭제를 지시했다"며 "김 씨는 퇴사자에게서도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폐기하고 증거를 인멸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부사장 등은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하고, 가습기 살균제의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않거나 부정확한 것을 알렸다"며 "증거자료를 은닉하거나 없애려 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며 "PHMG를 제조·공급한 SK케미칼·SK이노베이션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주의를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SK케미칼·SK이노베이션의 책임이 불분명한 만큼 이들이 환경부의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위반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월 법원은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SK케미칼·SK이노베이션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성분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업무상 과실치사 판결이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혐의 재판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PHMG는 동물실험을 통해 인체 위해성이 확인된 화학 성분으로 옥시는 해당 원료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유통했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PHMG를 포함한 제품을 제조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올해 5월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CMIT·MIT 성분을 원료로 사용한 제품은 인체 위해성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SK케미칼 측이 기존에 밝힌 것과 다르게 CMIT·MIT 성분의 독성실험 연구보고서 등을 자료를 최근까지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다시 인멸한 정황을 파악한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검찰은 박 전 부사장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고 봤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은 1995년 서울대 수의과대 이영순 교수팀에 CMIT·MIT 성분의 안전성 검사를 의뢰했다. 2016년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SK케미칼 측에 해당 안전성 검사 보고서의 제출을 요구했지만, 당시 김철 SK케미칼 대표는 보고서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다.

재판이 끝난 후 피해자들은 "이런 재판이 어디 있냐"며 분노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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