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지난달에 이은 두 차례 폭우로 아파트, 도심 거리, 지하철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이 언제라도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까지 태풍으로 인해 사망 10명, 실종 2명, 부상 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진 포항에서 인명피해가 가장 컸는데요. 포항 남구 인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던 주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습니다. 소방 당국이 12시간 넘는 수색을 벌인 끝에 2명이 목숨을 구했지만, 7명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생존자들은 어떻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대비가 필요할까요?
생존자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지하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배관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첫 번째 생존자 A(39·남) 씨는 지하주차장의 오수관을 붙잡고 버텼으며, 두 번째 생존자 B(51·여)씨는 배관 위 공간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배관과 천장 사이의 작은 틈이 ‘에어포켓’을 형성하면서 생존자들이 호흡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가족을 다시 보겠다는 일념으로 오랜 시간을 견뎠다고 합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A씨는 구조된 후 병원으로 가는 119구급차 안에서 아내에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는 심경을 전했습니다. B 씨는 사건 당시 10대 아들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아들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실증실험기반 시설물 설계기준 개선’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발목 높이(수심 17㎝)의 물이 계단을 통해 쏟아질 땐 남녀 모두 계단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 정강이 깊이(수심 35㎝) 정도가 된 상황에서는 슬리퍼나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계단을 오르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릎 높이인 45.5㎝ 이상 침수된 경우에는 남녀 모두 보행이 불가능했습니다.
지하 공간에서 계단을 통해 대피할 때는 발을 빼고 성큼성큼 걷는 것이 유리합니다. 슬리퍼나 하이힐, 장화를 신고 있다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대피해야 합니다. 또 계단의 중앙부는 유속이 빠르므로 좌·우측으로 이동해 벽을 잡고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며, 주변 난간을 충분히 이용해 대피해야 합니다.
특히 수심이 40㎝가 되기 전에 대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압으로 인해 출입문 개방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심이 40㎝ 이상일 경우 성인 남성이 출입문 개방에 어려움을 겪었고, 성인 여성은 개방하지 못했습니다. 수심이 50㎝를 넘어서면 남녀 불문 출입문을 개방할 수 없었습니다. 연구원은 실제 상황에서는 토사 등으로 인해 출입문 개방이 더 어려울 가능성이 크므로 침수상황이 발생한다면 재빠르게 대피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인명피해가 이어지자 지하주차장 등 지하 공간에 차수판(방수판)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고시한 ‘지하 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에 따르면 지하 공간의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방수판 등을 설치하거나 모래주머니를 설치하고, 유입된 물을 빼내기 위한 배수펌프 및 집수정을 설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해당 기준은 지자체가 지정한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한정돼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